세상의 진실은 금방 드러나지 않는다. 금방 드러나는 것이 진실이라면 이미 진실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진실이 드러나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속담처럼 현실을 비유하기 좋은 것도 없다. 속담은 소박한 일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지만 그 안에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세상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피터 브뤼겔(1525~1569)의 ‘네덜란드 속담’이다. 이 작품은 한 마을을 묘사한 작품으로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속담을 시각적 이미지로 바꾸었다.
‘네덜란드 속담’ 은 속담 85개를 한 장의 그림으로 집약해서 표현한 일종의 설화적 풍속화로, 완벽한 구도미로 유명한 브뤼겔인 만큼, 이 그림 역시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음에도 조금의 혼란스러움이나 흐트러짐이 없다.이 작품의 원제는 ‘푸른 망토’ 혹은 ‘세상살이의 어리석음’이다. 브뤼겔은 귀족 출신이면서도 서민층의 생활을 즐겨 화폭에 담았다.
화면 중앙에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남편에게 푸른색 모자가 달린 망토를 씌워주고 있는 것은 그녀가 지금 남편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른 망토는 부정한 아내를 암시하고 있다. 푸른색은 전통적으로 기만을 나타내는 색이다. 그 부부 뒤로 붉은 모자를 쓰고 촛불을 밝히는 남자는 아무에게나 아첨하는 남자를 뜻한다.
화면 오른쪽 아래 널빤지 위로 손에 닿지 않는 빵을 잡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남자는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을 의미한다. 반면 가난한 남자 위쪽으로는 반대로 빵의 일종인 타르트가 너무 많아 지붕 위까지 널어둘 정도로 재산이 넘쳐 흐르는 사람의 집이 보인다. 이는 곧 풍족한 살림이나 지나친 탐식, 쾌락 등을 을 뜻한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쏟아진 밀가루 반죽을 주워 담고 있는 남자는 인생의 한 번 실수는 다시 담기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화면 왼쪽 아래에 기둥을 물어뜯는 사람은 위선자를 뜻하며 그 옆에 오른손에 숯을 들고 왼손으로는 물동이를 들고 있는 여인은 신용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화면 중앙의 푸른색 지중 옆 테이블에는 여우가 앉아 있고 거위는 탁자 위에 있는 술병에 주둥이를 대고 있다. 여우 앞에 있는 접시는 비워 있다. 이것은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푸른색 지중의 누각에서는 악마가 고해성사를 듣고 있다.
왼편에 담장에 기대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주는 사람은 매사에 빈틈이 없는 완벽한 사람을 뜻하고 물속에 서서 부채를 들고 손으로 햇빛이 물에 비추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은 잘된 이웃을 배 아파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 뒤로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사람의 엉덩이가 보인다. 그 당시에는 화장실을 물 위에 지어 바로 하수 처리했다. 개울가 앞에서 잡은 물고기를 모닥불에 굽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물고기를 잡아 굽는 것은 시간과 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브뤼겔의 이 작품은 그가 추종한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에서 ‘이런 쇼는 없다. 세상에, 이 무슨 연극이란 말인가. 어리석은 이들의 행동은 얼마나 기이한가’를 가르쳤던 교훈에 가깝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지나친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지 못했다고 후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일들을 거울삼아 똑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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