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벌금을 내지 않고 오히려 뉴질랜드로 도피한 뒤 호화생활까지 누렸다는 의혹을 받아온 전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이 미납 벌금을 내는 대신 노역을 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국민들은 사법부의 유전무죄 결정에 억장이 무너졌다. 정부로부터 복지 지원금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해 단돈 5만원에 없어 자살을 선택했던 세 모녀의 안타까운 사연이 아직도 뇌리에서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있는 자들에게 더없이 후한 특혜를 베푼 한국의 사법부를 보니 씁쓸하기까지 하다.
허 전 회장은 2007년 법인세 500억 원 탈루 및 회사공금 100억 원대 횡령 사건으로 기소돼 2011년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 및 벌금 254억 원이 확정됐었다. 그러나 2010년 항소심 선고 직후 출국해 판결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 납입해야 하는 벌금형 집행을 피해왔다. 문제는 앞서 항소심 재판부인 광주고법이 벌금 254억 원의 환형유치를 명하면서 ‘유치기간 50일’을 동시 선고한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 5억 원’꼴이다. 기업 관련 범죄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최고액 일당 계산’이다. 탈세 혐의로 2008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일당은 1억1000만원이었다.  일반 서민의 경우 90% 이상 판결이 노역 일당을 5만원으로 잡는다.

     법원이 수백억원을 탈세 횡령한 허 회장에게 일당을 5억원으로 계산해 50일만 일하게 한 것은 누가 봐도 봐주기 판결이 아닐 수 없다. 허 회장은 그나마 수사 당시 긴급체포 상태였던 하루를 제외한 49일치 노역만 남았다. 1, 2심 재판장은 모두 광주, 전남 지역에서만 근무해온 향판(鄕判)이고 허 회장은 지역 유지다. 재판관과 지역 기업인의 관계도 의심할 수 밖에 없어 국민들의 분노는 더하다.
그러나 유전무죄는 아쉽게도 우리의 현실이다. 얼마전 김승연 전 한화회장과 전두환 차남 전재용씨의 집행유예 판결 소식 이후, 일반 국민들이 그 정도 범죄를 저질렀다면 과연 집행유예로 끝낼 수 있었겠느냐는 불만이 인터넷 웹사이트를 가득 메운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김승연 전 회장은 재벌이다. 범죄사실은 위장 계열사 빚을 계열사가 대신 갚는 방식으로 회사에 1585억원의 손실이 입혔다는 것이다. 이에 대법원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 판결을 내렸다. 비슷한 시기에 무직이었던 윤모씨씨는 결혼식장에서 축의금 봉투에 든 15만원을 절도한 혐의로 징역 3년을 받았다. 1585억원은 15만원의 대략 100만배 정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만원을 훔쳐도 징역 3년, 1585억원에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다. 이 정도면 거의 면죄에 가깝다. 실제로 재벌닷컴의 발표에 따르면, 90년 이후 10대 그룹 총수 7명이 횡령, 배임 등 경제범죄를 저질러서 받은 형량은 총 22년 6개월인데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실제로는 단 하루도 실형을 살지 않았다.

      88올림픽이 끝난 한국은 연일 축제 분위기 속에서 영등포 교도소에서 공주 교도소로 이송되던 25명 중 12명이 탈출해 인질극을 벌인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지강헌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당시 TV로 생중계되기까지 해서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탈출한 이들은 잡범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더 흉악하게 변한 것은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 때문이었다. 당시 전경환은 600억 횡령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고작 징역 7년을 선고받았고 그나마도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반면 지강헌은 500만원 절도에 무려 징역 17년을 선고 받았다.  인질극을 벌이다가 끝이 난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왜냐하면 지강헌이 세상을 향한 말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그는 범죄자이고, 인질범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잘했다고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 뱉은 고통의 짧은 외침은 세상 사람들에게 큰 울림이 되었다. 돈 없는 것이 죄가 되었던 1988년의 한국, 그러나 2014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건물은 높이 올라가지만 우리들의 세상은 예전 그대로인 듯하다.

     뉴욕 시장을 3차례 연임했던 피오렐로 데 라과디아가 판사로 일할 당시 그가 내린 판결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 번은 노인이 빵을 훔쳐 먹다가 재판을 받게 됐다. 판사가 법정에서 노인을 향해 “늙어가지고 염치없이 빵이나 훔쳐 먹고 싶냐?” 고 한마디를 던졌다. 이에 노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사흘을 굶어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라고 대답했다. 판사가 이 노인의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당신이 빵을 훔친 절도행위는 벌금 10달러에 해당한다”며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판사가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더니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그 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이 도시 시민들 모두 책임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에게 벌금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며, 방청객 모두에게도 각각 50센트씩의 벌금형을 선고한다.” 그래서 모인 돈이 57달러 50센트였다. 노인은 10달러를 내고 47달러50센트를 가지고 법정을 떠났다.

      돈이 통용되는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돈과 권력의 유무에 따라 대접이 달라진다. 법적으로는 분명 ‘인간은 평등하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돈이 있으면 법 위에도 설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만든 것이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이다. 돈이 있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으로 굽실거리고, 권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발 아래 머리를 조아린 우리들이 바로 유전무죄의 세상을 만들어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앞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때다. 그럼 언젠가는 우리 사회도 있는 자에게 일당 5억을 선고한 판사가 아니라, 라과디아 판사 같은 이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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