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삶을 위해 반드시 돈이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가진 것보다 또는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원하는 데서 비극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랑도 팔아버렸던 여인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데릴라다. 돈에 매수된 데릴라를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삼손과 데릴라’다. 이 작품은 종교화지만 종교적 의미보다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삼손의 정열적인 구릿빛 피부, 그의 리드미컬한 근육의 묘사가 관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은 초인적인 힘을 지닌 남자였지만 금기가 있었다. 힘을 솟아나게 하는 머리카락을 절대로 잘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자를 좋아한 삼손은 많은 여자와 사랑에 빠졌어도 자신의 비밀을 결코 누설하지 않았다. 하지만 삼손은 예루살렘 근처 아름다운 팔레스타인 여인 데릴라를 사랑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안 팔레스타인들은 그녀에게 삼손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돈으로 유혹한다.
데릴라는 즉시 은 1000냥에 매수되어 몇 번의 시도 끝에 삼손의 비밀을 알아냈다. 삼손은 그녀의 배신에 두 눈을 잃고 머리카락이 잘려 힘을 쓰지 못한다.
루벤스의 ‘삼손과 데릴라’는 빛과 어둠을 이용해 사랑과 배신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데릴라의 침실에서 삼손은 사랑이 끝난 후 그녀의 배 위에 잠들어 있다. 얼마나 깊이 잠들어 버렸는지 자신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가슴을 드러낸 채 데릴라는 삼손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으면서도 돈을 받기 위해 이발사가 삼손의 머리를 자르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발사 머리 뒤에 있는 조각 장식품은 비너스와 큐피드로, 고개를 약간 비스듬히 숙이고 있는 비너스와 데릴라의 자세가 같은 것은 사랑에 빠진 삼손을 암시한다. 또 삼손의 구릿빛 피부와 데릴라의 우윳빛 피부가 대비를 이루고 있고, 데릴라의 붉은 치마 색깔이 삼손의 갈색 바지와 절묘하게 대비와 조화를 이루어 더욱더 강렬함을 뿜어내고 있으며, 여기에 데릴라의 치맛자락의 움직임과 근육의 굴곡이 강한 운동감을 발산하고 있다.
잠든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는 남자의 옆에 서 있는 노파는 그 장면을 놓칠세라 촛불을 밝히며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사창가 포주인 노파는 악을 상징하고 있지만 성서에서는 나오지 않는 인물로 루벤스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그려 넣었다. 화면 오른쪽에는 횃불로 얼굴을 밝히고 있는 팔레스타인 병사들이 문밖에서 몰래 숨어 지켜보고 있다.
이 작품에서 데릴라의 강렬한 붉은색 옷은 사랑의 열정과 앞으로 일어날 피의 비극을 암시한다. 루벤스는 이 작품에서 화려한 내부 장식을 그려넣어 고급 사창가의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28세 때 그린 이 작품으로 루벤스는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화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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