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너무 힘들었고 지금은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30대 중반의 남성 S씨는 발기부전으로 필자를 찾았다. 무엇보다 그에겐 슬픈 러브 스토리가 있다. 3년을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다. 부모님도 마음에 들어 했고 그들의 결혼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견례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양가 부모는 혼수문제부터 사사건건 자존심 대결을 벌이더니 결혼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귀한 자식을 “저런 집구석에 못 보낸다”는 부모들의 고집에 정작 당사자들의 소중함과 절실함은 무시됐다. S씨와 여성은 결별의 날에 이름 모를 카페 구석에서 온종일 하염없이 울었다 한다. 슬픈 이별 후 또 3년, 모든 것이 새옹지마(塞翁之馬). 그에겐 또 다른 인연이 나타났다.
“제가 간사하다 싶을 정도로 지금 만나는 사람이 좋습니다. 솔직히 여러 면에서 더 낫죠. 헤어진 과거 여친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이별이 잘했던 일이 아닌가 싶다니까요. 그런데….”
S씨는 과거 결혼을 반대했던 부모에게 엄청난 분노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새로운 짝이 과거 여성보다 낫다 보니 그런 분노는 눈 녹듯 사라졌다. 벅차 오른 기대와 부모의 호응에 결혼준비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이번엔 새로운 짝과 성행위에서 발기 반응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친한 친구들에게 고백했죠. 다들 아직도 제가 이전 여자를 못 잊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그건 아닌데….”
전형적인 심인성(心因性) 발기부전인데 그 심리적 원인을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S씨 친구들의 지적처럼 과거 여성을 못 잊거나 새로운 짝에게 진정한 감정이 안 생겨서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S씨처럼 좀 다른 부류도 있다. 그의 표현처럼 그는 현재의 짝에게 푹 빠져 있다. 훌륭한 스펙에 미모와 성품도 더 뛰어나서 오히려 과거 여친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잊혀졌다. 하지만 현재 여성과 성행위에서 심리적 흥분이 되지 않고 발기에 실패하다 보니 또 안 되면 어쩌나 하는 수행불안에도 빠져 있다.
“심리적 거세 때문입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자면 S씨가 과거 결혼하려던 시도는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해 진정한 성인이 되는 과정이다. 그런 과정에서 부모의 지나친 개입은 자식이 결혼을 통해 이루려는 심리적 독립의 싹을 칼로 베어버린 것과 같다. 이를테면 자신의 독립성을 찾으려는 S씨의 무의식이 결혼 실패로 인해 심리적 거세를 당한 것이다. 이는 장성한 아들을 품안의 아이로만 생각하는 부모의 무의식, 그런 부모에게 철저히 순종할 수밖에 없는 아들의 도덕적 자아와 관련이 있다. 특히 이런 경우는 장남이나 마마보이, 착한 아들로만 성장해 왔던 남성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다행히 S씨는 치료에 열심히 임했다. 과거 결혼 실패와 관련해 부모로부터 받은 심리적 거세의 상처와 좌절을 극복하면서 현재의 여성과 성행위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진정 행복해하며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결혼은 당사자들의 일이다. 결혼 과정이든 결혼 후든 부모의 지나친 개입은 자녀의 심리적 독립을 저해하고 어떤 식으로든 불행을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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