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전신 그려넣은 최초의 2인 초상화

     결혼식은 사랑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이다. 결혼은 두 사람의 사랑을 입증하는 동시에 법적으로 사랑의 지위를 보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식은 그 시대의 생활상과 가치관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미술 역사상 결혼식을 그린 작품 중에 얀 반 에이크(1390년께~1441년)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이 가장 유명하다. 그 시대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상이 나타나 있지만 이 작품이 중요한 것은 최초로 모델의 전신을 그려넣은 2인 초상화라는 점이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은 결혼의 의미를 세밀하게 표현했다. 베르메르의 창가에서 은은하게 흘러들어오는 빛과는 또다른 느낌의 빛이 온화하게 방안을 비추고, 등장 인물의 표정은 물론 의상과 침대 벨벳 시트의 질감까지 느껴질 정도로 섬세한 붓길이 전해진다. 또 방안을 장식한 소품과 심지어는 강아지의 털마저 살아움직이는 듯 표현된 놀라운 사실감에 자연스런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고급스러운 외투를 입은 남자는 다소 길게 늘어져서 그려져 있으며, 무뚝뚝한 표정이나 알 수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이 사람은 이탈리아 루카 출신으로 브뤼헤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부유한 상인인 조반니 아르놀피니이다. 건너편에서 하얀 면사포를 쓰고 푸른 드레스에 녹색 외투를 입고 수줍은 듯이 조용하게 남자를 응시하는 여인은 조반나 체나미이다. 
여인의 부드러운 오른손을 남자가 왼손으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은근히 힘을 주어 받치고 있다. 여인은 나머지 한손을 배에 가져다 대고 있고 남자는 오른손을 올려 혼인 서약을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얀 반 에이크는 이 부부가 결혼 선서를 하고 있는 이 방에 종교적 의미를 담은 온갖 상징물을 자연스럽게 배치해 이들 부부에게 결혼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먼저 두 남녀의 포즈를 보면, 결혼서약을 하는 남편의 오른손은 이제 아내의 오른손 위에 겹쳐져 맞잡게 될 것이고 이로서 두 사람은 영원히 맺어지게 된다. 아내의 왼손에는 이미 두 사람이 결혼했음을 증명하는 반지가 끼워져 있어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한다. 남녀가 비슷한 자세로 나란히 서 있는 것은 둘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남자는 바깥으로 트인 창가에 붙어 서 있고 여자는 붉은 주단으로 장식된 침실을 의지하고 서 있는 것은 제각기 가정 안팎의 영역에서 담당한 몫을 가리킨다. 여인은 면사포를 젖히고 얼굴을 내보이고 있으니 이미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부부 뒤에 중앙에 있는 거울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장식하여 가톨릭교회의 ‘십자가의 길’을 의미하고 있다.
왼쪽 창에서 스며드는 빛을 머금은 과일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먹었던 금단의 열매 및 인간의 원죄를 상징한다. 이 과일을 그려 넣음으로써 인간의 원죄를 기억하고 종교의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낮인데도 샹들리에는 촛불 하나가 켜져 있다. 이 작품에서 촛불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신랑 옆에 벗어놓은 나막신은 출애굽기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라는 성소라는 의미를 지닌다. 거울 옆에 있는 묵주는 순결을, 신부 앞에 있는 개는 상대 간의 충실한 결혼생활을 상징하고 있다.
혼인 서약을 하기 위해 오른손을 들고 있는 신랑이 외부로 향하고 있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남자의 전통적인 역할을 암시한다. 침대 뒤 의자 기둥 끝을 성녀 마르가레테 조각상으로 장식했는데, 마르가레테는 어린아이의 수호성인으로서 이 작품에서 자식에 대한 소망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그림 한복판에 위치한 볼록 거울이다.  신의 눈동자 같은 역할을 하는 볼록 거울에는 이 방의 창문과 부부의 뒷모습 그리고 또 결혼을 주관하고 있는 신부님과 이 그림을 그린 얀 반 에이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를 증명하듯 화가는 샹들리에와 볼록 거울 사이에 ‘반 에이크 여기 있었노라. 1434’라는 라틴어 문구를 서명으로 남겨놓았다. 또 볼록거울의 테두리에는 예수의 수난 열장면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이 결혼이 영적인 의미가 있음을 암시한다.
에이크는 초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첫 번째 화가다. 그는 네덜란드 화가라는 점 외에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지만 눈으로 보이는 사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으로 유럽 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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