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 역사적 변화가 낳은 이단아

      '카사노바'라는 단어는 바람둥이, 호색가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 하지만 카사노바라는 인물은 단순한 바람둥이라기에는 꽤나 복잡한 이력을 가지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유럽대륙을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했던 모험가이자, 10대에 법학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이면서 40여 권의 저서를 남긴 저술가이기도 하다. 게다가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했고 화학, 철학, 문학에 박식했으며 펜싱과 도박, 춤을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호색가이기도 했다. 평생 수십 명의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었고, 자신의 자식이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걸 알고 속으로 웃기도 한 인물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카사노바 만한 바람둥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 카사노바만 유독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취급받는 걸까?
여행가이자 모험가였던 카사노바
카사노바는 172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6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10대 시절에 파도바의 대학에서 로마법과 교회법으로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타고난 방랑벽으로 인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않은 채 떠돌아다니며 살았다. 카사노바는 젊은 시절에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않았고 고정적인 수입도 없었다.
그런데도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카사노바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고, 적당한 때에 대담하게 벌인 사업이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업들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카사노바는 사업을 접고 돈이 궁해질 때면 사람들에게서 감언이설로 돈을 얻어내거나, 도박판을 휩쓸고 다니면서 돈을 긁어 모으기도 했다.
카사노바는 여행가이자 모험가이기도 했다. 그는 1755년에 베네치아의 피옴비 감옥에 투옥된다.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위험인물'이라는 것이 그의 죄목이었다. 그는 5년형을 선고받지만, 18개월 후에 탈옥에 성공한다. 그는 탈옥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감옥소장에게 남긴다.
"재판관이 죄수를 감옥에 처넣을 때 동의를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수도 탈옥하기 위해 재판관의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는 도시마다 '떠나라'는 명령 받고 추방당한 카사노바
이때부터 본격적인 방랑이 시작된다. 졸지에 탈옥수의 신분이 된 카사노바는 이후에 오랫동안 베네치아에 돌아가지 못하고 뮌헨과 스트라스부르, 파리, 런던, 페테르부르크를 떠도는 방랑생활을 한다. 물론 가는 도시마다 많은 여자들을 만나서 애정행각을 벌인다. 그러나 카사노바의 거침없는 모험도 42세가 되던 1766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운이 따라주지 않아 내리막으로 들어선다. 1766년에 바르샤바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카사노바는 이후에 가는 도시마다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추방당한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파리에서도 추방당한 카사노바는 탈옥수의 신분이기 때문에 고향인 베네치아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방랑을 계속한다.
카사노바의 말년은 우울한 나날이었다. 이후에 사면되어서 베네치아로 돌아가지만, 다시 그 곳에서도 추방당한다. 이미 '정치적 망명자이자 사기꾼'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카사노바를 반겨줄 도시는 유럽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카사노바는 1785년에 둑스 성의 사서로 자리 잡고 1798년에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많은 저서를 남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카사노바는 성의 하인들에게 경멸당하고 비웃음 받는 존재였다고 한다.
카사노바가 회고록을 쓰기로 작정한 것도 이런 배경이었을 것이다. 화려했던 젊은 시절은 가고 주위에서 들려오는 것은 경멸과 모욕뿐. 카사노바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다시 한번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 하루에 13시간씩 회고록을 저술했다. 그러나 회고록 원본의 운명도 카사노바만큼이나 순탄하지 못했다. 외설적인 표현 때문에 오랫동안 제대로 공개되지 못하다가 1960년대에 들어서야 제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출판되었다.
몰락한 지중해의 역사를 보여주는 베네치아, 그 환락가에서 태어난 카사노바.
그리고 프랑스와 영국, 독일, 러시아의 변화를 몸으로 보면서 스파이로 살아간 카사노바.
역사는 이런 절묘한 시기에 절묘한 인물을 낳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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