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년 만에 위기 맞은 동아시아 해양세력

     최근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동아시아 대륙세력 대 해양세력'의 구도로 관찰할 경우,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약 180년 만에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북한의 행보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형성된 해양세력의 동아시아 패권에 상처를 주고 있다는 의미다.
1840년 아편전쟁과 함께, 동아시아에는 새로운 질서가 찾아왔다. 서양열강이 절대 우세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청나라를 굴복시키고 지역 질서에 뛰어들면서부터 동아시아 질서가 급변한 것이다.
아편전쟁 이전에는 동아시아 국가들끼리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을 형성했다. 그런데 아편전쟁 이후에는 외래 세력이 양대 세력에 각각 편입됐다. 조선, 청나라 등으로 구성된 동아시아 대륙세력에 러시아가 편입됐고, 일본, 오키나와 등으로 형성된 해양세력에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이탈리아 등이 편입된 것이다. 
서양세력의 편입과 함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역학관계도 크게 바뀌었다. 1840년 이전에는 양대 세력이 세력균형을 이룬 데 반해, 1840년 이후에는 해양세력이 우위를 확보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서양 출신 해양세력의 기운에 편승해서 가장 인상적인 성공을 거둔 동아시아 국가는 일본이었다. '중국을 빙 둘러싼 티베트-미얀마-베트남-대만-오키나와-조선을 압박해서 중국을 간접 공략한다'는 1860년대 이후 서양열강의 전략에 편승한 일본은 서양보다 더 효과적으로 이들 지역을 압박했다.
일본은 1870년대 이후로 오키나와, 대만을 차지한 데 이어 조선을 자기 영향권 하에 두는 한편, 청나라는 물론이고 러시아까지 격파했다. 19세기 초반부터 영국과 더불어 세계 최강을 형성한 러시아마저 격파함에 따라, 일본은 일약 세계 정상급의 국가로 뛰어올랐다. 그래서 러일전쟁이 끝난 1905년 이후에는 동아시아 출신 해양세력인 일본이 서양 출신 해양세력과의 공조 속에서 지역 패권을 장악하게 됐다. 서양과의 공조 속에 급성장을 구가하던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이 관계를 스스로 손상시켰다. 사변을 일으키고 만주국을 세우는 과정에서,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서양과의 협조관계를 파기한 뒤,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세계질서를 추구했다. 일본이 서양과의 제휴를 끊고 만주국을 세운 것은, 1870년대 이래 일본의 발전을 가능케 했던 기초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급성장한 것은, 바다가 중심인 시대에 일본이 해양세력의 역할을 했기 때문인 동시에, 선진적 군사력을 보유한 서양열강과 제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양을 적으로 돌리는 한편, 만주국 건국을 계기로 대륙세력으로의 전환을 꾀했으니, 일본의 급성장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주사변 14년 뒤인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한 데는 이런 요인도 작용했다.
1945년에 미국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서양 출신 해양세력이 일본을 제치고 다시 지역 패권을 잡았다.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본토를 둔 나라이지만, 일본,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같은 도서 지역을 거점으로 동아시아 정책을 수행하므로 동아시아에서만큼은 해양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북한, 중국, 러시아가 협력체제를 유지한 적이 있지만, 이런 관계는 적어도 1960년대 초반에는 와해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도전적 행보가 이런 구도에 상처를 주고 있다. 북한은 2009년 3월 24일 외무성 담화를 통해 "6자회담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며 회담의 파탄을 공식 선언했다. 북한은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이미 6자회담의 파탄을 보여주었다. 거듭되는 핵실험으로 그런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미국이 인정하든 않든 간에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었음을 부정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데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의 핵우산 하에 있는 한국, 일본, 대만 등에 미묘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들 사이에서 자체적 핵무장의 목소리가 나오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 일본, 대만 등이 자체 핵무장을 하게 되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핵우산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동아시아 해양세력은 대륙세력에 밀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각국의 자체 핵무장은 미국 핵우산의 철거로 연결될 것이고, 이것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퇴장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해양세력에서 미국이란 나라가 빠지면, 상대적으로 볼 때 대륙세력이 우세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아편전쟁 이래 위축된 대륙세력이 지역 패권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북한의 행보는 단순히 남북관계나 북미관계 차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1840년 이래 형성된 동아시아 질서에 영향을 주는 메가톤급 충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비한다는 자세로 북한의 행보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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