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에서 광해군은 자기 일에 충실하고 성격적으로 당찬 유정을 좋아한다. 왕실 도자기를 제조하는 사옹원분원(아래 분원)의 하급 직원인 유정은 매우 불리하고 위험한 처지에서 도자기공의 꿈을 키워간다.
광해군은 그런 유정을 헌신적으로 도와준다. 왕자의 신분으로 도자기공 지망생을 도와주는 일로 인해 간혹 곤경에 처하면서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 속 광해군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는 스타일로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의 광해군은 드라마와 정반대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실리외교와 개혁정치라는 업적을 남겼지만, 사랑에서만큼은 꽤 이기적인 남자였다. 이 점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두 여인을 위험한 정치문제에 끌어들여 반대파의 공세에 노출시킨 데서도 잘 드러난다.
광해군이 가장 사랑한 여인은 상궁 김개시(김개똥?김가회)였다. 광해군은 그를 권력 최고 실세의 위치에 올려놨다. 광해 5년 8월 11일 치(1613년 9월 24일 치) <광해군일기>에 따르면, 광해군의 킹메이커인 이이첨도 국정의 핵심 사안과 관련해서는 김개시를 통해 광해군의 재가를 얻어내야 했다. 이처럼 광해군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정치 현장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김개시 같은 여인을 떠올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대단히 예뻤나 보다'라는 생각을 품곤 한다. 하지만, 그는 상당히 못난 외모로 유명했다. 위 날짜의 <광해군일기>에서는 그를 두고 "나이가 들어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모가 상당히 못났던 것이다.
광해군이 김개시를 가까이한 것은 김개시가 예뻐서가 아니라, 그의 두뇌와 업무 처리 능력 때문이었다. 김개시는 핵심적인 국정 현안에서 광해군에게 조언을 제공하고, 광해군을 대신해서 궐 밖에 나가 정치문제를 조율했다. 광해군이 수많은 궁녀 중에서 김개시에게 특히 주목한 것은 이런 능력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까웠는데도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김개시에게 신체적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장 친밀한 사이였는데도 자녀가 없었다는 데서 두 사람의 친밀성이 일반 연인 간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김개시는 후궁이나 왕비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광해군의 정치활동을 도우려면 후궁 신분보다는 궁녀 신분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광해군이 자기를 왜 좋아하는지를 김개시가 파악했음을 의미한다. 김개시는 광해군이 정치적 필요 때문에 자기를 좋아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여성을 가까이하는 광해군의 스타일은 또 다른 후궁인 정소용(소용 정씨)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광해 5년 12월 30일 치(1614년 2월 8일 치) <광해군일기>에 따르면, 정소용은 애교를 잘 부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무 처리에 매우 능숙했다.
그는 광해군을 대신해서 공문서를 처리하고 재가까지 대신 내릴 정도였다. 이로 인해 "왕이 갑절로 신임했다"는 표현을 보면, 광해군이 이런 여성들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광해군이 머리 좋고 유능한 여성들만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또 다른 후궁인 임소용(소용 임씨)은 외모와 애교를 바탕으로 광해군의 마음을 샀다. 광해군이 여성의 외모를 전혀 안 보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광해군은 사랑보다는 정치를 더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사랑을 선택했다. 자기의 정치가 위험한 정치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여성들을 정치에 끌어들인 것을 보면, 광해군이 사랑 문제에서만큼은 매우 이기적인 남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여성의 능력을 빼앗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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