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무책임하게 행동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나라를 지키기보다는 자기 안위를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선조 임금 못지않게, 아니 훨씬 더 무책임한 통치자가 있었다. 일부 사람들이 아직도 대한민국의 국부로 떠받드는 대통령 이승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나라를 지키지 않고 자기를 지킨 선조
MBC 드라마 <구암 허준>의 선조는 마지못해 피난을 가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드라마 속의 선조는 일부 신하들의 간청에 못 이겨 한성을 떠나 개성에서 평양으로, 다시 의주로 이동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 속의 선조는 드라마와 달리 아주 명확하게 무책임성을 보여주었다. 임진왜란은 음력으로 선조 25년 4월 13일에 발발했다. 선조는 전쟁이 발발한 날로부터 17일 뒤인 음력 4월 30일에 새벽에 소수의 수행원만 데리고 한성을 탈출했다. 선조는 개성, 평양, 영변을 거쳐 음력 6월 22일에 최전방인 평안도 의주에 도착했다. 이쯤 되면 갈 데까지 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선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압록강 건너 명나라로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조는 명나라 망명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해 6월 26일자 <선조실록>에 따르면, 명나라는 선조가 망명할 경우에 압록강 인근의 전방 군사기지인 관전보에 그의 숙소를 마련해줄 계획이었다. 이곳은 명나라와 여진족 군소 정권들의 경계지역으로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명나라가 그런 곳에 거처를 만들어주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선조는 그제야 체면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선조는 관전보 같은 곳에 기거할 경우에 자신의 체면이 추락하리라고 염려했다. 이렇게 오로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기 때문에 선조는 무책임한 왕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었다.

선조를 무색케 하는 무책임의 극치, 이승만  

    우리 역사에서 선조처럼 무책임한 통치자가 또 있었을까? 그런 사람은 정말로 또 있었다. 대통령 이승만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 오전 2시, 이승만은 국회에 통보도 하지 않은 채 대전으로 피신했다. 그러고는 라디오 담화를 통해 "정부는 서울에 머물 것"이라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정확히 말하면 안심시킨 게 아니라 기만한 것이다. 만약 이 정도로 끝났다면, 이승만의 무책임과 선조의 무책임이 비슷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은 선조 임금을 능가할 만한 결정적 행적을 남겼다.
1996년 4월 14일자 <연합뉴스>를 포함한 국내 언론들이 일본 교도통신을 인용해서 보도한 바와 같이,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기도 전에 이승만은 이미 일본 망명 계획을 세웠다. 교도통신이 제시한 자료는 전 야마구치현 지사이자 전 통산성 장관인 다나카 다쓰오가 쓴 회고록과 미국 국무부가 발행한 <미국 외교관계>다.

    한, 일 양국의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 자료들에 따르면, 6월 27일 새벽에 이승만은 존 무치오 주한미국 대사에게 "일본에 망명정부를 세울 수 있겠느냐?"고 문의했다. 서울이 함락된 것은 6월 28일이었다. 이승만은 서울이 함락되기도 전에 일본 망명을 생각했던 것이다. 
미국을 통해 이승만의 의향을 전해들은 일본 정부는 자국 땅에 대한민국 망명정부를 세우는 준비에 착수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싸우던 일본이 대한민국 망명정부를 차려줄 준비를 했던 것이다. 망명정부의 기지로 예정된 곳은 한국과 가까운 야마구치현이었다. 야마구치현은 일본 본토와 규슈섬의 경계 지역이다. 일본은 이곳에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전쟁 발발 직후부터 진행된 이 망명 작전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무산되었다. 만약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지 못했다면, 이승만 망명정부가 야마구치현에 상륙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전쟁 중에 책임을 방기한 통치자의 전형으로 선조 임금을 거론하지만, 이승만은 선조보다도 훨씬 더 무책임한 통치자였다. 그는 조선을 식민 통치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도 혐오감을 표시했던 일본에 망명정부를 꾸리려고 했다. 그런 인물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수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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