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말로 사랑의 무덤 아닙니까?”

결혼 후 권태기나 섹스리스 문제로 필자를 찾는 환자들은 자주 이렇게 하소연한다. 굳이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자극적인 소설 제목이 아니더라도 오랜 결혼 생활이란 말에는 흔히 권태기, 식어 버린 열정, 아내의 잔소리, 끝없는 의무감 등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올리게 된다.
결혼에 성 문제를 덧붙이면 성욕 저하나 성 기피, 각종 성기능 장애에 성적 불만족이 가득해 우리나라의 섹스리스는 그야말로 세계 수위를 다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스리스 문제에 남들 다 그렇다며 합리화하고, 자신의 성기능 저하나 건강 악화는 부정한 채 배우자가 매력을 잃었다, 사랑이 식었다며 상대 탓만 일삼는 건 비극이다. 설상가상 이런 남성들은 어딘가에 있을 신기루를 만나면 또다시 회춘할 것으로 착각한다.
그런데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라는 관념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킨 연구 결과가 있다. 호주의 애들레이드대 연구팀 보고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는 남성에 비해 오히려 결혼한 남성에게서 남성호르몬이 더 높게 관찰된다는 것이다.
원래 남성호르몬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저하되기 마련인데, 연령 증가 이외에 라이프스타일이나 행동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연구에서는 1500명 이상의 남성에 대해 5년 간격으로 두 번 남성호르몬 수치를 측정해 분석했다.
평균적으로 남성의 남성호르몬 수치는 매년 1%씩 저하되는데, 비만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우울증이 있는 남성에게서는 남성호르몬 저하 비율이 훨씬 더 심했다. 그런데 같은 나이에 결혼하지 않은 남성이 기혼자에 비해 남성호르몬의 저하가 심각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런 양상에 대해 연구팀은 기혼자에게서 남성호르몬의 농도가 더 높이 유지되는 이유로 기혼자의 건강상태가 더 좋고, 행복감이 더 높다는 데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연구 외에도 결혼을 유지하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여러모로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연구들은 많다. 특히 부부 사이에 성생활이 잘 유지되고 안정된 친밀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우리나라 남성들은 남성호르몬을 친밀관계와 연결짓기보다는 그저 물질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좋은 음식이나 영양제만 떠올리는데, 성호르몬은 신기하게도 성생활을 통해 고갈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남성호르몬은 적절한 성생활이 이뤄지면 더욱 상승한다. 특히 존재 의미가 분명한 배우자와의 성행위는 건강을 돌보는 훌륭한 유산소운동이며, 그 어떤 운동보다 훨씬 많은 쾌감과 긍정적인 뇌반응을 일으킨다.
남성호르몬은 비만, 운동 부족, 고열, 스트레스, 만성피로, 술, 담배, 비뇨생식기계 염증 등 저해요소가 있으면 고환에서 생산이 감소된다. 요즘은 남성호르몬 부족에 호르몬의 보충요법도 시행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족한 호르몬의 보충일 뿐이다.
호르몬을 보충하면 남성들은 성욕이나 발기력 등 성기능이 상승한다면서 기뻐한다. 필자는 이런 분들이 호르몬 저하로 인해 그만큼 내 심신이 나빴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필요하면 보충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호르몬 저해 요소들을 줄이고 적절한 성생활과 안정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성기능을 포함한 건강과 행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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