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나는 풋풋한 대학 새내기였다.
연극 동아리에 가입해 공연 준비를 하느라 대학생이 된 후 첫 여름방학이었지만 지방에 있던 집 에도 내려가지 않았다.
강당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잔뜩 허기가 져서 동아리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라면을 끓여 먹기로 결정했다.
 라면이 맛있게 익는 냄새가 오감을 자극하면서, 우리는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라면 냄비 근처로 어슬렁어슬렁 접근하기 시작했다. 언제 닦았는지도 모르는 컵이며 접시, 젓가락을 분주하게 챙겨들고 돌격 준비를 완료했다. 이제 30초만 있으면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벌컥, 동아리방이 열리며 전경들이 들이닥쳤다. 당시 동아리방에 있던 선배들을 비롯해 우리 연극반원 10여명은 속수무책으로 바깥으로 끌려나갔다.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라면 좀 먹고 가면 안되냐”는 나의 애절한 외침은 동아리방 여기저기를 뒤지는 전경들의 거친 움직임 속에 묻혀 버렸다.
 전경들에 의해 학생회관 바깥까지 끌려나가보니 주차장에는 소위 ‘닭장차’라고 불리우는 철창이 쳐진 버스가 서너대 서 있었고, 전경들이 쫙 깔려 있었다.
 연극반 선배 중 한명이 “아마 총학생회에서 정부를 비방하는 대자보를 쓴다는 사실을 누가 제보한 모양”이라고 다른 선배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학생회관 4층 정중앙에 위치한 우리 동아리방을 올려다보았다. 저기에 내 라면이 있을텐데….
 대자보고 비방이고 간에 내 안중에는 이제 퍼지기 시작할 라면 생각 밖에 없었다. 손을 내려다보니 경황이 없어 아직까지 나무젓가락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탈출을 기도하기에는 전경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결국 체념하고 닭장차에 올라탈 수 밖에 없었다.
 닭장차와 경찰서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닭장차에서 내려 마치 범죄집단이 된 것처럼 줄을 서서 경찰서로 들어갔다. 경찰서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나이 좀 지긋하신 경찰 아저씨에게 “아저씨, 여긴 감옥 없어요?”하고 물었다. 아저씨는 “있어. 왜 들어가고 싶어?”하고 물었다. “한번 구경하고 싶어서요”했다. 아저씨는 유치장 구경은 시켜주지 않았지만 매우 친절하게 이런 저런 나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야, 얘 누가 데려왔어?”하며 나에게 “저기 가서 앉아있어. 나 일 좀 하자”하고 사정했다.
한 서너시간을 그곳에서 머무른 후에 우리는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자술서에 학번과 이름을 쓰고 풀려났다.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했다고 하려니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끌려온 우리들은 총학생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산악반, 연극반, 기타 동아리 등 총학생회의 일에 별반 관심이 없는 학생들만 모조리 끌려오고, 총학생회는 이미 첩보를 접하고 튄 후였던 것이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우리는 난감했다. 경찰은 차비조차 쥐어주지 않았다. 닭장차로 다시 데려다 주지도 않았다. 황망한 상황에서 대부분 지갑조차 가지고 오지 않아 우리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털어 간신히 학교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동아리 방에 들어오자 방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라면 생각이 났다. 차갑게 식은 라면은 우동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불어터졌는지 면을 들어올리자 툭툭 끊어졌다.
그 이후로 다시 닭장차를 탈 일은 없었지만, 지나가는 닭장차를 볼 때마다 한동안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 라면, 좀 설익었더라도 한 젓가락이라도 집어 먹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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