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교 클래식 음악 동호회 ‘래드클리프 오케스트라’ 의 학생 93명이 지난주 서울 은평구 소재 진관사 한문화 체험관에 머물며 한국 불교문화를 배웠다. 진관사 한문화 체험관은 세상을 향해 다가가려는 현대 사찰의 의지가 담긴 건축물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기존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새 시대에 맞는 종교 시설을 짓고자 했다. 산중에 은거하며 수행하는 기존의 사찰과 달리, 사회와 접하는 종교 공간으로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개방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이러한 곳에 미국 최고의 명문대생들이 사찰체험을 위해 와글와글 모였다. ‘Harvard’라고 적힌 적갈색 후드티를 입은 학생들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북한산을 바라보며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들은 이런 웅장한 자연 속에 서울이 있다는 것에 신기해했다. 또, 케이팝 아이돌로만 한국을 접했는데, 직접 와보니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한국문화가 너무나 매력적이라면서 한국의 문화에 푹 빠졌다.  또, 진관사에서 ‘수륙재(水陸齋)’ 공연을 본 하버드생들은 어린시절부터 플루트와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지만 이렇게 독특한 동양음악은 처음이라며 감탄했다. 참고로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 존재하는 모든 고혼의 천도를 위하여 지내는 불교 의례이다. 진관사는 조선시대 왕실 주도로 대규모 수륙재를 주로 담당하였던 중심 사찰이었다. 반주 악기로는 태징·목탁·요령·북 등이 따르고, 의식의 중요한 부분에 이르면 불교의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의식 무용도 곁들이게 된다. 

    예일대학교의 아카펠라 동호회 학생 20여명도 비슷한 시기에 한국을 찾았다. 예일대 관계자는 “최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학생이 방문을 희망해서 여행지로 한국을 결정했다”고 했다. 다음 주까지 서울, 파주, 제주 등지를 방문하고, 난타 공연 관람, 비무장지대(DMZ)를 여행하는 등 다양한 한국 문화 체험이 목표다. 문화 체험에 그치지 않고 한국 대학과 학술 교류를 하는 학생들도 있다. 지난 11일 이화여대에는 하버드대 국제 교류 단체 소속 학생 13명이 방문했다. 이 하버드생들은 이화여대 학생들과 함께 팀을 이뤄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제작 워크숍을 진행했었다.

    기존의 한류 관광은 K팝이나 드라마 등 콘텐츠에만 집중됐었는데 이제는 한국 음식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면서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하는 젊은 층이 많아졌다. 이는 교육적 목적을 지닌 여행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런케이션(Learncation)이라고 한다.  러닝(Learning·배움)과 베케이션(Vacation·휴가)을 합친 신조어이다. 캐나다의 교환학생 과정, 일본의 농촌 체험 등이 대표적인 런케이션의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서비스수지 적자국가다. 경쟁 국가에 비해 과도한 서비스시장 규제와 제조업 대비 낮은 노동생산성, 인프라 부족 등이 서비스수지 적자를 키운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래서 정부는 서비스수지 개선을 위해서, 특히 적자폭이 큰 관광산업이 잘되는 방법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관광 정책으로는 이미 앞서 있는 국가를 선호하는 관광객에게 서비스로 앞서가기는 역부족이다. 얼마 전 태국은 ‘Thailand Travel Mart+2023(TTM+2023)’이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코로나19가 지나고 태국이 내세운 소프트파워 ‘5F(Food·Film·Festival·Fight·Fashion)’를 활용해 관광산업 도약을 모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본은 질적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외국인이 일본에 머무는 기간을 1.35박에서 1.5박으로 늘리고 워케이션(Work&Vacation) 활성화나 지속 가능한 관광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각자의 장점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경복궁 앞에서도 ‘수문장 교대식’이 시작됐다. 관광객들에게는 재미있는 콘텐츠일 것이다. 하지만 영국 버킹엄궁 근위병 교대식을 넘어서는 관광상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역의 대하축제와 복숭아축제, 딸기축제 등은 농수산물만 바뀌었을 뿐이지, 비슷한 구성에 비슷한 연예인 공연만 있다. 관광은 경험을 파는 서비스다.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일상에서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해본 경험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서는 한국의 서비스수지는 개선되지 못할 것이다.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만 관광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런케이션(Learncation)이라는 교육관광은 단순한 여행보다 학습을 더해 의도적으로 교육적 목적을 포함한 여행이다. 학창 시절에 경험한 수학여행이나 지금 대학생들이 하는 교환학생 제도도 그중 하나일 것이고, 넓게 본다면 유학 역시도 교육관광상품에 포함할 수 있겠다. 이러한 교육관광이 부흥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우리는 전 세계를 가르치는 ‘스승의 나라’가 될 수 있다. 교육여행 기간에 먹은 김치를 자연스럽게 찾고, 한국 브랜드에 호감있는 외국인들을 별도의 홍보 비용 없이 완전한 한국 팬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런케이션은 청소년을 포함한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붐이 일고 있다. 외국에 살고 있는 우리 2세들도 한국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세계 이민사회의 한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 런케이션도 새로운 여행 패턴으로 각광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지난 주말 콜로라도 한미 청소년 문화재단의 이사들이 모였다. 한인사회에서 꽤 인지도가 높은 이사들로 구성되었다. 시작부터 조짐이 좋아 보인다. 청소년문화축제, 동요대회, 골프대회, 한국축제 등 올 한해 청소년 문화재단에서 진행할 업무계획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리고 이와같은 런케이션도 청소년 문화재단이 추가적으로 진행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런케이션에 관한 학부모들의 유익한 아이디어는 언제든지 환영한다. 이외에도 청소년 문화재단이 하고자 하는 일에 한인사회가 적극 관심을 가져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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