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인생에서 두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을까.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결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는 잘못된 결과에 집착하고 종종 후회한다. “다음에는 지난 번과 같은 결정을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말이다. 이처럼 후회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그려낸 드라마가 요즘 인기이다. 그중 최근에 종영한 ‘이재, 곧 죽습니다’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죽음을 빌어 여러 인생을 반복하며 삶의 의미를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주인공 이재는 아무래도 이번 생은 실패다, 그래서 자살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재는 12번의 삶과 죽음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되었던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가 자살을 택했던 이유는 자신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무가치한 존재라고 여기며 현실을 비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극중에서 죽음을 빌어 인생의 두번째 기회를 얻었고, 아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속에 살아가던 엄마의 삶으로도 환생하면서 그간 알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고, 연인으로부터 그가 얼마나 큰 사랑받았던 존재였던가를 알게 된다. 

   그는 환생으로 두번째 기회가 주어지기 전까지 자신이 선택한 자살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장담했지만, 그를 아끼던 모든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절망이자 최악의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로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열두번의 생을 다시 살아보고 나서야 삶의 소중함에 오열하는 이재를 통해,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고 삶을 버리는 극단적 선택만은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지난달에 인기리에 종영한 ‘내 남편과 결혼해줘’ 라는 드라마도 주인공에게 두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주인공은 자신의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한 날, 그들로부터 살해당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10년 전으로 회귀했고, 인생 2회차의 기회를 얻으면서 시궁창 같은 운명을 개척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두번째 인생에서 인생을 바꿀 기회가 주어졌고,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꾸는데 성공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자신에게 끔찍했던 쓰레기같은 이들에게는 가차없는 복수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비록 드라마였지만 사이다같이 시원한 이 복수극은 두번째 기회가 필요한 모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다. 이처럼 드라마나 영화에서 인생 2회차 스토리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한 평론가는 ‘이생망’즉,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생각하는 정서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팽배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드라마가 아닌 실상에서도 두번째 기회는 찾아온다. 필자와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선배였는데, 최근 연락이 닿았다. 그는 명문대를 졸업했고 잠시 언론사에서 일을 하다가, 회사를 차려 성공가도를 달렸다. 동문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의 경제적인 부를 가진 선배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돈은 벌었지만 아내와는 이혼을 했고, 조기유학을 보낸 아들과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또, 사업체를 꾸려나가면서 조금이라도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면,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술을 마셨다. 이로인해 건강에 적신호가 왔고, 지금은 모든 사업을 접고 공기좋은 곳에서 요양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아들을 일찍 유학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아내와도 적당히 잔소리 듣는 사이를 유지하며 이혼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그런데 그는 60세가 넘어서 인생의 두번째 기회가 찾아왔다고 했다. 아들과 함께 골프 라운딩을 즐기면서부터다. 선배와 아들은 잘쳐야한다는 긴장감으로 형편없는 티샷을 자주 날렸다. 그럴 때마다 ‘멀리건’으로 서로에게 두번째 찬스를 허락했고, 이런 시간을 자주 갖게 되면서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부자관계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고 했다. 참고로 골프에서‘멀리건(mulligan)’은 골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관대함이다. 데이빗 B. 멀리건이라는 캐나다 골퍼에 의해 유래된 것인데, 공식적인 골프 경기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쉽게말해 첫번째 티샷에서 실수한 것을 너그러이 봐주고, 한번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배는 스스로를 닦달하고 목표에 집착하는 필자에게, 본인에게도 주변인에게도 매사에 ‘멀리건’을 주는 너그러움을 품어보라고 조언했다.

    선배의 말을 듣고 난 뒤 필자는 두번째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보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단번에 모든 것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 실패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성공하지 못했고 어떤 사람은 파탄 난 가정생활에 괴로워하며, 또 누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이 후회와 아쉬움의 근본에는 ‘기회는 한 번밖에 없다’는 1회 결정론이 있었던 것 같다. 아들 머리 위에 얹은 사과를 한 번에 맞춰야 살 수 있는 소설 속 빌헬름 텔처럼 말이다.하지만 선배의 말처럼 인생은 멀리건으로 가득 차 있다. 첫 번째 샷을 망쳤다면 두 번째 샷에서 잘치면 된다. 두 번째 샷 또한 망쳤다면 세 번째 샷을 잘 치면 된다. 처음에는 많은 멀리건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멀리건의 찬스가 우리에게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점차 멀리건의 수는 줄어들 것이고, 삶은 긍정으로 가득찰 것이다. 필자는 장애를 극복하고 의사나 목사가 되고, 부상의 아픔을 딛고 세계적인 선수나 코치가 되고, 파산선고를 하고도 다시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본 적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온 두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도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첫번째 기회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멋진 세컨샷을 날려보낼 계획도 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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