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범 한인원 대표

    한국의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영어교육 현실의 가장 큰 책임은 영어교육 정책 담당자들의 책임이다. 영어교육자들에게 자율권도 주지 않고 정부 주도의 정책 방향을 따라야만 하는 한국의 제도에도 역시 커다란 책임이 있다. 또한 그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의 근본적인 책임은 영어교육방법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언어교육 학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실패에 실패로 결론지어진 재래식 방법에, 켜켜이 새로운 영역을 추가하는 방식을 권하거나 묵인해온 학자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효율적이며 낭비적인 영어교육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의 언어교육 학자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 유창한 영어회화능력의 습득은 고스란히 학습자의 몫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한국적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유창한 영어를 습득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영어 선생님은 많지 않다고 본다. 한국의 영어 정책을 수립하는 책임자들 가운데도 한국적 상황에서 학습자들이 영어를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TESL을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도 기존의 방법들을 타파하고 한국적 상황에서 능숙한 영어를 습득하는 새로운 방법을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한국의 대학 및 연구 기관에서 TESL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내놓은 논문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살펴본 수 백편의 한국 영어교육 관련 논문들 가운데, 실패한 영어교육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 제기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논문은 극소수였다. 한국적 상황에서 영어의 말을 배울 수 있는 몰입환경 조성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논문 역시 극소수였다. 모두가 기존의 상자 속에 있는 방법들에 대하여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통계를 제시하거나 평가를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어차피 영어습득과 연결되지 않는 방법들이라면, 그것을 아무리 개선하고 교육방법을 달리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령, 옛날에는 책으로 가르치던 문법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대형 스크린으로 가르쳐서 학생들이 문법을 효과적으로 더 잘 알게 되었다는 논문을 발표하면,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말 한 마디 못하는 학습자들에게 문법을 효율적으로 더 잘 가르치기 위한 방법을 권해서 어디에 써먹겠다는 말인가? 문법은 영어 초보자들에게 오로지 해로운 중독성이 대단히 강한 악성 바이러스일 뿐 어떤 경우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논문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물론 내가 살펴본 논문이 그 분야의 모든 논문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와 같은 발견은 놀라운 사실이다.

    이처럼 요즈음 한국의 대세를 이루는 영어교육은 이미 대대손손 실패로 증명된 재래식 영어교육방법들을 첨단의 장비로 위장한 교육방법이다. 각종 첨단의 기술을 적용하여 문법이나, 어휘, 듣기 및 읽기 영역의 공부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요즈음 한국 영어교육의 주종목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한국의 영어학습자들과 영어교육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분명히 깨우쳐야 할 것은 바로 한국인들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가 영어문법이나 듣기 또는 읽기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문법이나, 듣기 또는 읽기나 쓰기의 기초가 우선적으로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말배우기로 영어공부를 시작하면 유창한 말하기는 물론, 듣기와 읽기, 쓰기 및 문법 실력이 자연스럽게 병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법이나 읽기 또는 듣기나 쓰기 등에 대한 효율적 학습방법에 대단 학설이나, 논문 또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드시 과감하게 등을 돌려야 하며, 효율적인 ‘말배우기’에 대하여 많은 이해를 쌓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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