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한국에 있는 어머니가 암 판정을 받았다. 가족의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특히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병원에 진료를 받으려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새벽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서, 지하철과 택시를 타고 가는 길은 멀쩡한 사람도 힘든 길이다. 간신히 병원 예약시간이 잡혀 서울로 올라가면, 의사와는 고작 5분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입원을 할 경우에는 당일 입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서 입원실이 나면 또 서울로 와야했다. 물론 지방에 있는 대학병원을 가면 가장 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하지만 크게 아파 본 사람들은 지방과 비교해 서울 소재의 대학병원을 찾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이는 수도권 집중형이 되어 버린 한국 의료체계의 허점이기도 하다.  

    지난주 한 지인이 심장에 이상소견이 보여, 한국에서 진료를 받고 싶다며 덴버를 떠났다. 그는 완치의 부푼 꿈을 안고 한국을 갔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여정인 것처럼 보인다. 의료보험 수급 대상자도 아니고, 응급 수술이 아니어서 그런지, 요즘 의사들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수술 일정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또 서울 대형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필자의 친척도 어제부터 의사들이 없어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서울 빅 5 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파업 혹은 집단 사직을 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국민의 몫이 되었다.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는 교민들이 많기 때문에 교민사회에도 피해가 이어진 셈이다.

    지난달 한국 정부가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대 정원을 매년 2천명씩 늘려 2035년까지 의사 1만명을 늘릴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의료계는 크게 반발했고,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 투쟁할 것을 선언하며 팽팽하게 대립 중이다. 참고로 서울 빅 5병원은 서울지역에서 가장 큰 5개의 의료기관을 지칭하는데, 서울아산병원, 서울삼성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가톨릭대서울성모병원을 말한다. 20일 현재까지 빅 5 병원을 비롯한 주요 100개 수련병원의 전공의 6천4백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이다.

    한국의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각종 통계를 통해서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환자들도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체감해 왔기 때문에 이는 논의가 필요없을 만큼 명확한 사실이다. 2021년 대한민국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적다. 이는 한의사가 포함된 수치인데, 만약 한의사를 제외하면 1000명당 2.2명으로 꼴찌이다. 그런데도 의대 정원은 지난 2006년 이후 3058명 수준으로 동결되어 있다. 사실 의대 충원은 2008년부터 불거진 이슈였지만, 그때마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으로 동결되었다. 

    전 세계는 고령화 추세에 맞춰 의사 수를 늘리고 있다. 독일은 공립 의대 정원을 기존 9천명에서 1만5천명으로, 영국도 지금까지 9천여명 정도 뽑았지만 2031년까지 1만5천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일본은 지난 10년간 의사 수가 4만3천명 가량 늘었다. 이처럼 전공의가 부족하면 의대 증원이 필요한 게 맞는데, 의사들이 파업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의료계의 입장은 의사 수는 충분하며,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의사가 늘어나는 것은 인력 과잉이라는 입장이다. 또, 수도권과 대도시에는 의사가 포화상태가 되어 의료 서비스의 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으며,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비 지출이 증가해 건강보험료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으며, 교육인프라 부족으로 의료의 질도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필수 의료 분야의 의사들은 점점 줄어들고, 수익성이 높은 미용 분야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수 의료수가가 낮기 때문에 의사들의 월급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다, 필수 의료진들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어 소송이 밀접하게 따라다닌다. 이렇다보니 대형 병원의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라고 부르는 과목에 의사가 사라지고  있다. 피부암을 치료하는 의사보다 피부점을 빼는 의사가 돈을 버는 구조가 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즉, 의대 증원을 해봤자 필수 의료 분야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산병원의 심뇌혈관센터에 뇌 수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의사가 1명이 있다고 한다. 그 한명이 24시간 365일 커버하고 있다. 또, 뇌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전국에 146명 밖에 없다. 지금 활동하는 의사는 약 11만 명이지만, 이중 삼분의 일이 피부미용 시술에 종사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정부와 의사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해법으로 들어가면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는 의사 정원을 확대해야 필수 의료 분야로 인력 공급이 된다는 입장이고, 의사들은 필수 의료 분야에 가려고 하는 사람이 늘어나도록 지원을 많이 하자는 방향이다. 하지만 의료계가 이러한 이유들로 집단 파업에 돌입했다면, 돈을 더 벌겠다는 발상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다는 게 국민적 공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주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예상대로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눈을 다쳐 지난주에 수술한 4살 아이는 상황이 악화되어 병원을 찾았지만 진료를 받지 못했고, 목요일 수술 예정이었던 할아버지는 수술이 취소되면서 집으로 내려가라는 통보를 받았으며, 외래 환자들은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등 한 두건이 아니다. 

    필수 분야를 포함한 의사들을 충원해야 하는 것은 한국 의료계의 당면 과제이다. 정부가 내세운 이번 정책에는 의료수가 인상 등의 당근책도 있고, 의사들의 기대 소득을 낮추는 정책도 같이 담겼다. 의료계는 당면 과제를 받아들이고, 정부는 의료계가 고민하는 시스템 개선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단번에 2천 명보다는 순차적으로 늘려가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겠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심화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국민 목숨을 담보로 집단 휴진으로 협박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다. ‘국민 목숨’보다 ‘밥그릇’이라는 비난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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