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구 목사 / 향기나는 편지

    알렉산더 대왕은 고대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그리스부터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정복했는데, 그의 나이 33세에 이룬 놀라운 업적이었습니다. 그가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후에 자신을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참모들에게 소원하는 바를 한 가지씩 들어 주겠다 무엇이든 말하라고 했답니다. 저마다 필요한 것을 구했는데, 그 가운데 데닉이라는 참모가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대왕이시여, 대왕이 정복하신 나라들 중에 하나를 제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갑자기 좋았던 분위기가 얼음물을 끼얹은 듯 쐐~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젊은 왕이 땅을 정복하고 또 정복했음에도 만족하지 않고 또 땅을 정복하러 갈 것이 뻔한데, 그래 그 땅을 자기한테 달라는 청을 올리다니 필시 이건 대역죄로 다스려질 매우 위험천만한 요청이었기 때문입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알렉산더 대왕도 조금 움찔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것 같더니 드디어 대왕이 입을 열었습니다. “나라 하나를 그대에게 주겠소. 그대는 나 알렉산더가 나라 하나쯤은 뚝 떼어 줄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으로 믿었기에 내 큰 맘 먹고 호의를 베푸는 것이요.” 온 세상을 지배하겠다고 땅을 정복하기 바빴던 이 알렉산더 대왕도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에게는 그 생명과도 같았던 땅을 호기롭게 떡 하니 떼어 줬다는 이야기는 믿음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일인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실례라 하겠습니다. 

    그런데요. 이게 사람만 그런 게 아니더라는 겁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란 말씀이 있으니 우리에게 믿음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주신 아들을 바치라 하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알기에 단 한 번도 인신제사를 원하신 적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이번엔 어째서 이삭을 바치라 하시는지 아브라함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장작을 지고 올라가던 이삭이 아버지 에게 물었습니다.“나무도 있고, 불도 있는데 제단에 올릴 제물은 어디 있나요?” 그 때 아브라함이 믿음의 눈으로 보는 바를  말합니다.“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멘.   히브리서 11장 1절은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이 말씀을 공동번역 개정판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모리아의 한 산으로 아브라함은 갔습니다. 거기엔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양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2장은 이삭을 바치느냐 안 바치느냐보다 더 중요한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리아의 한 산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흘 길을 가면서 얼마나 생각이 많았을까 싶습니다.

   믿음이 흔들리는 사흘 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 데서나 이삭을 바친다 하지 않고 지시할 그 산으로 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실수와 언약을 깨는 수많은 일들 앞에서 자기를 기다려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제로(0점)이었던 그 때부터 여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자리(100점)까지 이르도록 이끌어 주시고, 기다려 주신 하나님의 열심에 보응하였습니다. 자기 생각대로가 아닌 말씀대로 따라가는 순종의 삶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가 이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던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는 동안 어디를 가든지 제단을 쌓고 제사하는 일을 제일 먼저 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말씀을 따라 삽니다. 그리고 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럴 때 믿음이 점점 자라 100점 만점에 100점짜리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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