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액으로 LA 다저스와 계약한 오타니 쇼헤이(30)의 반려견이 ‘미국 비자’를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물론 ‘가짜 비자’다. 당연히 반려견에게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가 준비한 이벤트인데, 오타니의 유명세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최근 일본으로 돌아간 오타니가 주일 미국 대사관을 방문했을 때 선물로 준비한 것이다. ‘투타겸업’의 전설을 쓰고 있는 오타니의 유명세에 반려견도 주목을 받는 모양새다.  

      오타니는 자타가 공인하는 메이저리그의 아이콘이자 전 세계 스포츠 최고의 스타 중 하나다. 투수로는 사이영상에 도전할 수 있는 성적, 타자로는 홈런왕에 도전할 수 있는 성적이다. 역사상 이런 선수는 없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돈에서도 역대 최고 반열에 올랐다. 2023년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오타니는 수많은 구단들의 러브콜 속에 LA 다저스의 손을 잡았다. 10년 총액 무려 7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메가딜을 성사시켰다. 북미는 물론 전 세계 스포츠 단일 계약으로는 최고액이다. 어찌되었든 오타니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수 있는  상징성을 거머쥐었다.  

   필자는 학창시절 야구광이었다. 여름방학때마다 부산 집에 내려가 야간 경기가 없는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항상 사직 야구장에 앉아있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롯데, 해태, 삼성 등의 국내 구단의 선수 실력들이 최고인 줄 알았고, 팬심을 발휘해 얼마나 열심히 응원을 했는지 모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잠실구장을 자주 찾았다. 홈그라운드의 응원석인 1루석이 아니라 3루석에 앉아야 했던 탓에 응원을 하면서도 힘이 빠지는 날들이 잦아졌고, 그러다가 야구에 대한 흥미를 점차 잃어갔던 것 같다. 비록 직접 야구장에 가는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지금까지도 한국 야구관련 뉴스는 자주 보는 뉴스 중 하나에 속한다. 야구에 대한 필자의 관심은 아들에게 이어졌다. 둘째 아들이 5살이 되던 해 아라파호카운티에서 엄마들에게 가장 인기있다는 주니어스포츠 단체 산하 야구팀에 등록을 시킨 적이 있다. 처음에는 그저 필자가 좋아하는 스포츠여서 아들에게 야구를 시킨 것이었는데, 미국에 살다 보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풋볼에 이어 야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다보니 아이들끼리도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주제가 풋볼과 야구였다. 필자의 아들은 그 중 야구부 친구들과 친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일본이 가장 야구를 잘하는 나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일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에 본인도 모르게 반발심리가 불쑥 튀어나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생각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오타니 때문이었다. 미국의 십대들마저 야구에 열광하게 만든 오타니를 보면서, 필자는 처음으로 일본이 부러워졌다. 그리고 둘러보니 그는 꽤많은 한인 팬들도 보유하고 있었다.  

   천재, 괴물, 유니콘, 만화 주인공, 눈을 의심스러울 만큼의 재능, 별에서 온 그대 등, 야구 선수 오타니에게 붙은 수식어는 끝이 없다. 잘 치고, 잘 던지고, 잘 달리는 그는 서른 살에 이미 눈부신 업적을 쌓았다. 메이저리그 최초 한 시즌 10승 40홈런 기록에 만장일치 MVP, 일본 WBC 우승, 세계 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 계약까지, 여기에다 훤칠한 외모에 성실한 인성마저 갖고 있어서 현실에서는 도저히 찾아보기 힘든 완벽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강속구 투수이면서 동시에 홈런 타자인 그에게서 좀처럼 부족한 점을 찾기 어렵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인생은 처음부터 탄탄대로였을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 또한 인생의 바닥을 헤매기도 했다. 그는 일본 수퍼스타로 엄청난 기대 속에 201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그러나 투수와 타자를 겸업한 초반의 활약은 좋지 않았다. 부상으로 인한 팔꿈치와 무릎 수술을 하면서 2년 넘게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곧 업계에서 투수로서도, 타자로서도 감 떨어진 선수로 낙인찍혔다. 투수와 타자, 두가지 겸업 도전을 선언하며 일본에서 데뷔했을 때부터 그는 우려와 비관론에 맞닥뜨렸다. 많은 전문가들이 “하나에 전념하는 편이 낫다”며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조금만 삐끗해도 “역시 무리”라는 회의론이 쏟아졌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시범 경기에서 부진했을 때 미 언론에서는“고교 수준”이란 혹평도 나왔었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견뎠던 것 같다. 오타니가 모든 장애물을 돌파한 방식은 ‘전력 질주’였다. 타자와 투수 두가지 모두를 할 수 있는, 즉 이도류(にとうりゅう) 자체는 처음부터 시련 속에서 탄생했다고 본다. 그는 고등학생 때 부상으로 잠시 투구를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타격 연습에 매진했다. 미국에서 침체의 늪에 빠졌을 때도 그는 조용히 그리고 자기만의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과학적 분석으로 동작을 가다듬었고, 데이터를 활용해 피로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찾았다. 식습관과 운동은 물론 휴식과 수면 관리에도 철저하게 매달렸다. 마침내 2021년 잠재력이 폭발하며 진짜 실력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어린 시절 오타니는 아버지에게 야구를 배웠다. 당시 아버지가 강조한 원칙 중 하나는 ‘항상 전력 질주해야’였다. 이것이 오늘의 오타니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스포츠 심리학자 미쓰오는 오타니는 완벽주의자가 아닌 최선주의자라고 분석했다. 완벽주의자는 결과에 집착해 스트레스를 받고 곧 흥미를 잃는 반면, 최선주의자는 실수와 실패를 받아들여 실패로부터의 회복이 빠르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꺾이지 않고 전력 질주하겠다는 집념이 오타니의 진짜 탁월한 재능이 아닐까.  얼마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뭐든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지 말자.”고 했다.  그보다 스무해를 더 살아 온 필자에게도 힘을 보태준 말이었다. 솔직히 필자가 일본의 무엇을 칭찬하게 될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칭찬할 만한 것은 칭찬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교민 모두도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지 말고,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전력 질주하는 해가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