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빛교회 유지훈 담임목사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콜로라도가 반려견을 제일 많이 키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사는 동네에도 저희 집만 반려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도 애완동물에 관한 관심도가 많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개는 훌륭하다”와 같은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람들이 반려견을 대하는 자세나 인식등이 많이 바뀐 것을 보게됩니다. 전처럼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등이 하나의 물건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애완동물들을 잘 돌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 사람에게 모든 피조물을 잘 돌보고 간직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어떠한 동물도, 아니 더 나아가 이 세상을 아끼고 돌보고 잘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함부로 동물들을 대해서도 안되고 자연과 자원들을 악용하거나 착취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좋게 만드신 이 세상을 청지기로서 우리는 잘 다스려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반려견이 존중을 받고 가족처럼 된다 하더라도 개와 인간의 사이에는 넘지 못할 벽이 있습니다. 김동호 목사님께서 전에 영상을 통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반려견을 너무 사랑해서 누군가가 자신을 “개 아빠" 혹은 “개 부모"라고 하는 말이 너무 좋다고. 그런데 누군가가 자신을 “개"라고 한다면 화를 낼 것이라고. 네, 맞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아무리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우리를 개나 고양이 취급을 한다면 그것을 모독으로 받아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개나 고양이 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개밥을 먹지도 않고 고양이 사료를 먹지 않습니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넘지 못할, 아니 넘지 말아야 할, 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벽을 넘으신 분이 계십니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넘지 못할 벽이 있듯이 신과 인간 사이에도 벽이 있습니다. 그 벽을 하나님께서는 넘으셔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단순히 겉 모습이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제2의 아담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아담이란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사람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지 아십니까? 신이 인간이 되다니!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시고 영원 , 불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에게는 온전한 진리와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런 분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제한시키셨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 시간 속으로, 공간 속으로 들어 오셨습니다. 무한하신 분께서 유한하게 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짐승처럼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랍고 쇼킹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영어로 “scandalous" 라고 표현하는데 그 의미는 수치스럽다는 의미입니다. 수치스러움을 감당하시며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를 개라고 표현하면 우리는 모욕감을 느끼는데 그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수치스러움, 모욕감을 감당하시면서도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것을 다 겪으시고 또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혹시 아픔이나 고통, 혹은 질병을 겪어 보신 적 있으신지요? 그럴때 누군가가 와서 위로의 말을 건네 주면 어떤 기분이 듭니까? 내가 겪는 것을 겪어보지 못한 자가 위로의 말을 건네면 그것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내가 겪는 것을 겪은 사람이 위로하면 그 위로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나를 이해하고 공감하니까.


    함께 한다라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단순히 같은 시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겪어보고 느끼고 서로 공감하는 것.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은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공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히 4:15, 새번역). 우리가 겪는 모든 것을 겪으시고 우리를 동정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모두는 구원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 세상은 얼마나 죄로 들끓고 있습니까? 욕심과 자만으로 인하여 서로를 헐뜯고 약용하고 착취하고. 평화와 조화로운 생명이 가득한 삶이 아니라 이기심과 죽음으로 가득한 삶 가운데 우리는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죽음에서 삶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반려견이 죽을 병에 걸렸으면 우리는 치유하려고 노력을 하겠지만 절대 대신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겪는 모든 것을 겪으신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진정한 삶을 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절의 메시지입니다.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의 메시지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넘지 못할 벽을 넘으셨다? 이 사랑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길 소망합니다. 이번 성탄의 계절을 맞이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그 사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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