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비전교회 이동훈 공동 담임목사

    다윗은 20대를 거의 대부분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십여 년을 도망자로 사는 동안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두 번에 걸친 블레셋으로의 망명을 결행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도피생활 초기에 혼자의 몸으로 블레셋 가드로 몸을 숨겼습니다. 가드는 다윗이 물멧돌로 죽인 골리앗의 고향입니다. 자신을 위장한 채 숨어들었지만 아기스 왕의 신하들의 눈에 금방 발각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이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미친 사람 흉내를 내야만 했습니다. 천하의 다윗이 스타일 구기는 행동까지 하며 구사일생으로 블레셋을 빠져나왔습니다. 


    도피생활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다윗은 혼자의 몸이 아닌 600여명의 군대를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다윗이 도피 생활을 하는 동안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의 수가 그냥 육백명이 아니라 부모 처자식들을 합하면 삼천여명이 넘는 수였을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다윗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이 삼천여명의 식솔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윗에게 있어서 도피생활 중에 가장 버거운 일은 자기를 따르는 이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사울 왕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유대 땅 안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절대 절명의 위기 속에서 다윗은 두 번째로 블레셋 망명을 또 다시 결행합니다. 블레셋은 이방 땅 우상의 나라요 이스라엘 최대의 적국인 원수의 나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불신앙적인 행동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블레셋으로 들어가 사는 동안 아기스 왕의 마음에 들기 위해 비굴할 정도로 아부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블레셋이라는 세상을 등지고 살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의 어느 이름 없는 변방의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쳐 박혀 살지도 않았습니다. 블레셋에서의 다윗과 그의 공동체는 대단히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생할를 합니다. 


    자, 그러면 블레셋이라는 ‘세상’ 즉,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대적의 땅으로 스스로 파고 들어간 다윗은 과연 이 원수의 나라, 미움의 관계로 대할 수밖에 없는 블레셋에서의 망명생활을 어떻게 유지하고자 했을까요? 다윗은 자기 군사와 식솔들을 우상의 나라요 원수의 나라에 아무렇게나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블레셋이라는 세상속에서 살지만 그 블레셋에 속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해서 처음으로 한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살아갈 성읍 하나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기스 왕으로부터 ‘시글락’이라는 성읍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3,000여명)은 이곳에서 16개월을 생활하게 됩니다. 왜 다윗은 블레셋 나라 한 복판에서 살면서도 자신들만의 한 성읍을 달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블레셋의 우상 종교와 세속 문화로부터 자신과 자신의 사람들을 지켜내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시글락’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안전장치요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세상이라는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안전장치요 하나님의 공동체가 결국 우리에게는 무엇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먼저 일차적인 목적은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을 수밖에 없는 성도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목적 때문에 하나님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오늘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교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울타리입니다. 이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시글락’은 어디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블레셋이라는 늑대와 이리들이 우굴 거리는 세상으로부터 나의 신앙의 안전을 지켜 줄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라는 울타리, 곧 무리(공동체)를 떠나서도 내 신앙을 내 스스로 지켜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교만입니다. 그러기에 일차적으로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내 신앙이 사느냐 죽느냐가 교회 생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윗의 망명길은 괴로웠으나 외롭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함께 겪으며 동행할 ‘시글락’이라는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지 못한 불신앙의 태도로 블레셋으로 들어갔지만 뜻 밖에도 우리 하나님은 다윗의 연약함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아둘람 공동체’에 이어 ‘시글락 공동체’를 허락하시고 경함케 하시므로 적국의 나라 한 복판에서도 이 ‘시글락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 자신의 하실 일들을 펼쳐 나가십니다. 


    주님은 세상 속에 구원 받은 성도들을 고아와 같이 홀로 두시지 않으십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어마 무시한 핍박을 가했던 로마라는 제국 안에 ‘지하 교회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독한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교회와 성도들을 괴롭힐 수는 있어도 외롭게 만들 수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지치고 찢기고 상한 심령들이 위로 받고 치유 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또 다시 세상으로 나가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갈 영적인 힘과 능력을 공급받는 곳 이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