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교회 이두화 담임목사

    삶 속에서 구조된 경험이 있으십니까? 저는 직접 구조된 적은 없지만 사람을 구조하는 구급차를 탄 적은 있습니다. 자녀가 아파서 병원으로 이송되기 위해 탔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송될 그때 저는 부모인지라 병원 관계자로부터 자녀가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이라는 언질을 받았지만, 그 병원은 아이들을 위한 병원이라 제가 평상시에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가보지도 않았던 병원이었습니다. 구급차를 누가 운전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구급차가 가는 대로 몸을 싣고 떠나야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언질이라도 받았지만, 가만히 침대에 실려 누워 가는 저의 어린 자녀는 영문도 모른 채 누군가가 인도해 준 대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구조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누구의 손에 구조되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 상황을 들어서 아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신앙인은 이렇게 구조된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모두 다 삶의 주관자이신 주님을 믿기 전까지는 ‘표류’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표류’라 하는 이유는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경험하기 전 우리 스스로 인생의 항해자가 되어 원하는 곳을 가려 했던 것 곧, 나름의 ‘기준’ 때문입니다. 저마다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에게는 나름대로 기준이 있습니다. “기준(基準)” 이란 행동이나 가치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 혹은 수치입니다.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보다 쉽게 설명하면 ‘저마다 살면서 나름의 이유와 판단을 내리는 근거가 있어서 사람들은 모두 자기 뜻을 펴며 산다’는 겁니다. 이를 더 줄이면 ‘모두 자기 뜻대로 살더라’라는 겁니다.


    회사를 고르는 기준, 자녀를 양육하는 기준, 교회를 고르는 기준, 살 지역을 선정하는 기준 등, 기준들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준을 가지고 계획하고 판단한 대로 모든 것이 되던가요? 계획한 대로, 뜻대로 된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정한 길은 많았었지만, 항상 그 길을 벗어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정해진 길을 벗어나 떠다니는 것을 우리는 ‘표류’라고 하지요. 누구나 한 번쯤은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아 표류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많은 이들이 부단히 노력합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까? 어디서 시작해야 하나? 그러나 정답을 찾기란 아주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그 표류에 마침표를 찍는 구조된 사람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삶 속에서 표류할 때 삶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 인생의 목적과 부르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28:1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인생에서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아 결박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자 기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나고 삶이 바뀌었습니다. 예수 핍박자에서 예수 전달자가 되고 이방인의 사도라는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삶이 하나님께 구조된 삶을 살다 보니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구조자의 손길을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그 손길을 따라 그는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죽으러 가는 길인데 구조자의 손길은 그가 아는 길과는 다른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건짐을 받은 구조된 사람의 삶을 살다 보니 이제 구조되어야 할 사람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풍랑 가운데 함께 배에 탔던 모든 이들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어느 누구도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당신들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구조라는 건짐을 받을 것이라고.


   성경을 다시 ‘보면 구조된 후에’ 알았다고 합니다. 무엇을 알았던 것일까요? 멜리데는 피난처라는 뜻이 있습니다. 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나 죽을 뻔한 모두가 ‘피난처라’는 이름을 가진 멜리데라는 섬에 가게 됩니다. 함께 배에 탔던 사람들이 270여 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다에서 조각 10개를 던져서 10개가 같은 곳에 도착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나 자그마치 무려 270여 명이 피난처라는 섬으로 동시에 표류하여 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인생의 구조를 받았던 경험을 가진 자로써 하나님이 구조하시면 인생의 표류를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인생도 표류를 끝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무엇을 하든 어디를 향해 달려가야 할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길을 잃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직업의 귀천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과정 중 목적지로 가지 못하는 것임을 안다면 하나님의 나라라는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하고 찾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가 정해져서 세상의 가치관들 속에서의 표류를 마칠 수 있습니다. 둘째, 부르심이라는 것을 갖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부르심은 이방인의 사도, 복음의 전달자였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다르지만 다양한 사명을 주십니다. 누군가는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감당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군가는 받은 재능이나 은사를 통해 감당케 하십니다. 모두에게 하나님은 부르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구조된 사람입니까? 아니면 표류 중에 계신 분들입니까? 주를 가까이함으로 나의 가치관, 세상의 가치관에서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되어 창조주의 뜻을 따라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