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는 왕궁과 사원 투어이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에 가야하고 뉴욕에 가면 자유의 여신상을 보듯, 태국에 가면 왓프라깨우를 가야하기 때문에, 필자 또한 가장 먼저 이곳으로 발길을 옮겼던 것 같다. 왕궁의 자태와 분위기가 오랜시간이 흘러도 필자의 뇌리에 남아있는데, 또 한가지 복장 검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민소매, 러닝셔츠, 배꼽티, 시스루, 발목 보이는 바지, 쫄바지, 반바지, 미니스커트, 심지어 긴바지이지만 찢어진 청바지도 금지한다는 일명 왕궁 복장 규정이 적힌 간판이 입구에 있었다. 생각없이 반바지를 입고 갔다가 근처에서 코끼리가 그려진 긴 바지를 사 입었던 적이 있다. 


     로마 바티칸 투어를 할 때도 그랬다.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상 앞에서는 소매치기도 조심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복장에 유념해야 했던 곳이었다. 이곳도 민소매와 무릎 위로 올라오는 반바지나 치마를 입고는 입장이 불가했다. 30년 전 필자는 이러한 복장 제재에 대해 무지했었다. 독일의 쾰른 대성당을 먼저 보고 로마에 갔는데, 쾰른 대성당은 반바지나 슬리퍼를 신어도 입장에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티칸도 비슷할 것이라고만 여겼던 것 같다. 다행히 배낭 안에 들어있던 긴바지를 꺼내 입었고, 투어 내내 엄청 더웠던 기억이 새록하다. 이 외에도 각국을 돌아다닐 때마다 복장 규제가 한번쯤은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 성스러운 곳들이었고, 노출없는 수수한 차림을 권장했다.


     이민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아이들이 등교할 때의 복장이었다. 학창시절 교문 앞에서 복장 검열을 받았던 우리 세대로서는 이곳 미국 아이들의 등교 복장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약간 껄렁해 보이는 느낌이랄까. 여학생들은 짧은 치마나 핫팬츠, 그리고 민소매티와 배꼽티를 입고 다니기 다반사이다. 반바지에 슬리퍼, 모자까지 쓰고 등교하는 남학생들도 많다. 머리길이, 치마길이, 셔츠 단추 잠김상태까지 철저하게 지적받았던 우리의 학창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별다른 복장 규제가 없는 공립학교와는 달리, 작은 아들이 진학한 천주교 계열 고등학교는 달랐다. 반바지는 무릎 바로 위 정도로 허용되었고, 그것보다 조금이라도 짧으면 벌점을 받았다. 후드티는 입으면 안되고, 추운 날 입는 외투에도 모자가 달려있으면 안된다. 또, 셔츠는 카라가 있어야 하며, 바지는 벨트를 착용할 수 있는 면바지나 양복바지 종류를 선호했다. 


    한국에서도 복장 규제를 하는 곳을 암암리에 볼 수 있다. “정장 버튼 상단 1개만 잠근다, 양말은 구두와 유사한 색으로 발목 양말은 안 된다, 6~8.5cm 폭의 타이를 권장한다…”이는 롯데백화점이 직원에게 전달한 직원 복장 가이드라인이다. 백화점 입점 점포에서 일하는 직영 직원이 지켜야 할 복장 지침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는데, 무려 20페이지에 달한다. 또,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병원에서는‘네일 아트는 짧게’, ‘근무 중 슬리퍼는 발등이 덮이고 발가락이 보이지 않는 슬리퍼’, ‘긴 머리는 묶음 머리로’등 일반적으로 간호사들이 병원에서 지켜야 하는 조항을 적시해 놓았다. 이중 세간에서 논란이 됐던 사항은 출퇴근 복장까지 간섭했기 때문이었다. 출퇴근 복장으로 청바지, 백바지, 레깅스, 고무줄 바지를 모두 금지했고 오직 정장 스타일 바지만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치마는  앉았을 때 무릎이 보이지 않는 정도라고 명시했다. 병원 측은 환자를 대하고 위생에 신경 써야 하는 만큼 단정해야 하고 깨끗해야 하기 때문에 용모 지침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였다.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미국에서도 복장 규제를 하는 곳이 있다. 연방의회가 그 중 한 곳이다. 그런데 정장차림을 엄격하게 고수해온 상원의 복장 규정이 이번 주부터 완화되었다는 소식이다.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의 척슈머 원내대표가 지난 주말 비공식적인 복장 규정을 강제하지 말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에는 상하원 모두 공식적인 복장 규정은 없지만 사실상 불문율로 정장 차림을 엄격히 요구해왔다. 남성의 경우 넥타이를 착용한 정장차림을 해야 하고, 여성은 소매 없는 의상과 발가락이 드러나는 구두가 금지되어 있었다. 이번 조치는 민주당 소속 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 존 페터만 의원으로부터 촉발된 측면이 크다. 그는 최근 상원 복장 규제 탓에 본회의장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고 회의실 한구석에서 별도로 투표하는 굴욕을 당한 바 있다. 그러나 공화당을 중심으로는 이같은 규정완화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복장 규정은 우리 사회의 기준이자, 기관에 대한 존중을 표시하는 일종의 ‘예의범절’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는 여전히 복장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의회의 복장 규정이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민주당을 탈당한 커스틴 시네마 의원은 2019년 취임 선서 당시 소매가 없는 원피스를 입어 논란을 일으켰고, 2017년에는 소매 없는 원피스를 입은 여기자가 하원의장실에 입장하려다 부적절한 복장이라는 이유로 제지를 받은 바 있다.


      한인들이 사랑하는 스포츠인 골프에도 복장 규제가 있다. 이러한 복장 규정의 시작은 회원제와 대중 골프장이라는 골프장의 차별화를  위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복장의 단정함은 회원으로서 자격을 설명하고 계급과 성별을 표현했던 것이다. 코스의 신사들은 클럽하우스를 고급 사교장으로 인식해 경기복장이 아닌 재킷 착용을 관례화했다.  이 부분은 골프가 귀족 스포츠 였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복장도 변했다. 남성도 반바지가 허용되었고, 여성은 감각적이고 파격적으로 입어도 괜찮다. 


    심지어 휴양지의 고급 식당이나 럭셔리 호텔 식당에서도 복장을 점검한다. 이처럼 복장 규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존재해 왔다. 예로부터 복장은 사회의 규율과 약속을 의미한다. 아무리 개성과 자유를 중요시 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거나 성스러운 곳에 입장할 때 수영복을 입을 수는 없다. 복장은 본인의 판단에 맡기되, 어려운 자리일수록 노출만 삼가면 별문제 없이 섞일 수 있을 듯하다. 자칫 복장 규제가 인권 침해라고 비추어질 수도 있겠지만, 때와 장소를 가릴 수 있어야 하는 것도 현대인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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