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하와이로 휴가갔던 덴버 거주 베테랑 조종사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를 활용하셔도 됩니다." 지난 8일 하와이 마우이섬을 덮친 산불로 아비규환이 된 카훌루이 공항. 불길과 강풍이 겹치면서 항공편이 줄줄이 취소되고 섬을 탈출하려는 승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공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항공사들은 긴급 항공편을 띄우려고 해도 도로가 차단된 상황에서 기장과 승무원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이때 미 항공사인 '유나이티드 항공' 데스크로 중년의 남성이 찾아왔다. 그는 "제가 시간이 된다"면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는 다름 아닌 30년 경력을 가진 유나이티드 항공의 베테랑 조종사였고,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휴가를 왔다가 공항에 발이 묶인 이들을 위해 조종간을 잡겠다고 자원하고 나선 것이었다. cbs 방송 등 언론들은 화제의 주인공인 빈스 에켈캄프가 이번 하와이 산불 참사 속에서 이처럼 300명 넘게 탄 여객기를 조종해 미 본토로 무사히 귀환하면서 현지에서 '영웅'으로 불린다고 지난 13일 보도했다.


     덴버에 거주하는 빈스는 부인, 고교생 딸과 함께 마우이섬으로 휴가를 왔다가 지난 8일 새벽 3시쯤 호텔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창밖으로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굉음을 냈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일단 공항으로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때만 해도 빈스 가족은 당시 막 시작된 산불이 90명 넘는 사망자를 낸 참사로 이어지리라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가족은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고 지붕이 무너지는 아비규환의 현장을 뚫고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공항에서는 이미 항공편이 줄줄이 취소되기 시작했으며, 긴급 항공편을 띄운다고 해도 기장과 승무원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던 상황이었다. 빈스 가족의 항공편 또한 취소되면서 다른 승객들처럼 공항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그때 빈스는 "거기에 내가 아는 후배 파일럿이 한명 있었다"면서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빈스는 30년 넘게 조종간을 잡았던 베테랑 파일럿으로, 현재 훈련 매니저로 일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이상 조종석에 앉았다. 결국 다른 파일럿을 구하지 못한 항공사 측은 빈스에게 연락해 조종간을 맡겼고, 이튿날 그는 300명 넘게 탄 여객기를 몰고 무사히 본토에 착륙했다. 비행기에는 빈스의 부인과 딸도 함께 탔다. 빈스는 "집에 돌아와 안심됐다"면서도 "나는 커다란 퍼즐의 한조각이었을 뿐"이라며 "마우이에 필요한 것은 너무나 많고 내가 한 일은 극히 작다. 내가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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