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로라에 있는 한인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컵라면 코너에서 한 일본인을 만났다. 그는 한국라면 진열대 앞에 서서,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한국사람인 것 같기도 해서, 나는 내가 사고 싶은 라면만 카트에 담고 빠져나오려고 했는데,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영어로 어떤 라면이 제일 맛있냐고 물었다. 필자는 라면에 대한 답보다 국적이 어디냐고 먼저 물었다. 일본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일본라면보다 한국라면 맛에 푹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라면과 안성탕면을 먹어봤는데, 다른 종류의 한국라면을 추천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나의 의견에 동의라도 한 듯, 내게 추천받은 컵라면을 박스째 사 가지고 갔다. 


     간식이면서도 주식 같은 라면의 매력은 대단하다. 값싸고 조리하기 쉬워 제2의 식량으로 불릴 정도로, 이제는 전세계 케이푸드의 대표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위치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봉지 라면의 원조는 사실 일본이다. 1958년 8월 25일 안도 모모후쿠 씨가 개발했다. 당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심각한 식량 문제를 겪고 있었다. 안도가 설립한 닛신식품이 국수 면발에 간단한 양념 국물을 섞은 아지스케면을 ‘끓는 물에 2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판한 것이 라면의 시초다. 제품명은 치킨라멘. 뒤이어 1959년 에스코크, 1960년 묘조식품(明星食品)이 가세했다. 당시 라면은 아지스케면으로 면 자체에 양념을 가미한 것이었는데, 시일이 지나면 쉽게 변질되는 단점이 있었다. 묘조식품은 이 점을 보완해 1961년 현재 시판되는 것과 같은 분말스프를 첨가한 라면을 첫 생산했다. 이것이 오늘날 라면의 모태가 됐다. 이후 일본에서 인스턴트 라면 산업은 급성장했다.

 
     한국라면 시장의 절대강자는 농심이다. 1985년 라면시장 1위에 오른 후, 그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농심라면의 원조는 롯데라면이다. 롯데라면은 1965년 처음 선보였는데, 당시 신춘호 회장이 이끄는 롯데공업이 롯데라면을 내놓았다. 이 제품은 삼양라면과 함께 인기를 끌다 1974년 농심라면으로 이름을 바꿨다. 따지고 보면 롯데라면이 신라면의 원조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농심이 아니다. 1호 라면은 삼양라면이다. 삼양라면은 1963년 9월 15일 처음 나왔다고 한다. 삼양라면의 탄생은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의 착안에서 비롯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1960년대 초 남대문 시장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무엇보다 식량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을 돌며 시장 조사를 했는데 특히 일본이 패전 후 식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눈여겨보았다. 일본에서 라면을 시식한 그는 라면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5만 달러를 정부로부터 빌려 일본 묘조식품의 라면 제조 기술 및 기계를 도입하게 되었다. 그래서1963년, 드디어 한국의 토종 1호 라면이 탄생했다. 당시 라면 가격은 중량 100g에 10원. 당시 커피 한 잔에 35원, 김치찌개가 3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저렴했다. 그러나 초기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밥과 국에 익숙한 국민들로서는 라면이 한 끼 식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밀가루로 만든 인스턴트 식품도 생소했다. 그러다가 1965년 때맞춰 나온 한국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이 시작되면서 라면은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대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식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인기몰이는 계속되었고, 40년이 훌쩍 넘은 2023년 1분기 농심은 매출 8천604억원으로,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16.9%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85.8% 늘어난 638억원이라고 보고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인기를 얻으며 호실적을 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진을 ‘진라면’ 모델로 발탁한 오뚜기 역시 라면류 매출 증가에 따라 올해 1분기 매출이 8천600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15.4% 늘었다. 한류 확산에 따라 한국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올해 1분기 라면 수출액은 2억800만달러로, 역대 1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삼양은 봉지라면에 이어 일본 컵누들을 베껴 1973년 ‘컵라면’을 선보였다. 그러나 생소하고 값도 비싸 곧 퇴출당했다. 농심은 포기하지 않고, 1981년 국사발 모양 ‘사발면’을 다시 선보였는데, 상에 놓고 먹을 수 있는 ‘사발’ 모양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사발면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추면 외국인들이 사발면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클로즈업되곤 했다. 이어 세계 각국에서 사발면 주문이 쏟아졌다. 팔도는 1986년 세계 최초로 사각 컵라면 ‘도시락’을 선보였다. 뜨거운 물을 부을 때 더 안전하고, 휴대도 간편했다. 이는 부산항에 들락거리던 러시아 선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보따리상을 거쳐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면서 한국의 컵라면은 지난 30년간 44억개 이상 팔리며 러시아의 국민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2012년 출시된 삼양 ‘불닭볶음면’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매운 라면에 도전하는 ‘파이어 누들 챌린지’를 세계적 문화 이벤트로 만들기도 했다. 관련 유튜브 영상만 100만개 이상 제작됐다. 


     작년에 출시되었다고 하지만, 필자가 최근에 알게 된 라면이 있다. 바로 ‘야키소바 볶음면’이다. 이는 일본의 닛신이 한국 불닭볶음면을 베낀 라면이다. 일본의 라면 원조 기업인 닛신식품이 봉지라면 ‘닛신 야키소바 볶음면 한국풍 달고 매운 까르보’와 컵라면 ‘닛신 야키소바 U.F.O 볶음면 진한 한국풍 달고 매운 까르보’를 출시했다. 이는 2018년 삼양식품이 출시한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유사한 분홍색 포장지에 한글로 ‘볶음면’이라고 표기한 제품을 선보인 것이다. 이처럼 라면계에서 상징적인 일본회사가 자사 라면 포장지에 한글로 ‘볶음면’이라 쓰고, ‘고추장과 치즈의 감칠맛’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확실한 전세역전이다. 물론 이러한 전세역전은 라면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난주 마트에서 일본 사람이 한국라면의 맛에 홀딱 빠져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보니,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는 K라면의 끊임없는 혁신이 일구어낸 역전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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