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선교사 임동섭 목사

    한 남자가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땀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남자는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긴 한숨을 쉽니다. 장면이 바뀌어 남자는 차를 몰고 탁 트인 도로를 달려갑니다. 그리고 카피가 들립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한 카드회사의 TV 광고는 ‘열심히 일하는’ 많은 직장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었습니다. 어떤 회사들은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주말을 즐기려고 차를 타고 나서면 길이 막힙니다. 막상 떠나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일 년에 2, 3번 나가면 끝입니다. 나머지 50주는 방안에서 보내게 됩니다. 평소 대화가 없었던 가족들이 같이 주말을 보내는 것은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주 5일제를 먼저 실시했던 선진국들은 대부분 이혼율이 증가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1994년 독일 폭스바겐사입니다. 이 회사가 주 4일제 도입 후 이혼율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여가 시간이 증가하면 삶의 질이 높아지지만 여가를 활용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레저 사이언스’(Leisure Science)라고 불리는 ‘여가 학’은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학문의 한 영역에 편입된 지 오래입니다. 미국의 일리노이 주립 대와 조지아 대, 캐나다의 워털루 대 등에 학과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국내에는 명지 대학교에 석사과정으로 ‘여가경영학과’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부산 경성대학교에서는‘재미 학 개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명지대 김정운 교수는 여가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개개인이 가족과 함께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지 않는 한, 긴 여가는 오히려 괴로운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남성들은 ‘독수리 5형제 증후군’에 빠져 있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으면 인생의 의미가 없다는 식의 시각이죠. 하지만 여가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재미를 느끼고 그 재미를 가족과 공유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제가 대학 3학년 때 학군장교(ROTC: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훈련을 받았습니다. 같은 내무반에 공수부대에서 낙하훈련을 받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낙하훈련을 받기 위해서 훈련비용을 내고 공수부대원들과 똑같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낙하훈련을 받으려고 온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낙하훈련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남학생이나 여학생 모두 공수부대원과 똑같은 훈련을 받는다고 합니다. 가장 힘든 훈련은 지상에 내린 후 낙하산을 빨리 접는 훈련입니다. 낙하산을 빨리 접지 못하면 낙하산에 끌려간다고 합니다. 이 훈련을 하기 위해 제일 먼저 지프차 뒤에 밧줄을 걸고 10m쯤 뒤에 훈련생의 허리에 밧줄을 묶습니다. 그리고 지프차가 달립니다. 훈련생은 처음에는 뛰어갑니다. 넘어지면 끌려갑니다. 훈련을 마치고 나면 피부가 벗겨지기도 하고, 멍든 곳도 있고, 여기저기에 모래가 들어갑니다. 모래가 다 빠져나오기까지는 보통 한 달이 걸린다고 합니다.


    공수부대원은 의무적으로 낙하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돈을 내면서 지독한 훈련을 받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친구에게 질문을 했더니 그는 하늘에서 낙하할 때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를 볼 때 고된 훈련이라도 자신이 선택하면 재미있는 일이 되고 타의에 의해서 훈련을 받으면 고생이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재미’란 선택의 자유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1세기 리더십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두들 소통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소통이 잘 되려면 소통의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의사소통은 두 가지 원칙에 의해 유지됩니다. ‘순서 바꾸기(turn-taking)’와 ‘관점 바꾸기(perspective taking)’입니다. 이 두 가지 원칙 중 하나라도 망가지면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순서 바꾸기’란 내가 이야기한 후에 상대편에게 순서를 넘겨주는 것을 말합니다. 내 턴(turn)이 있으면 상대방 턴(turn)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서 바꾸기가 잘 되면 정서적 상호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말을 아무리 청산유수로 할지라도 이 정서적 순서 바꾸기가 망가지면 곧바로 지루해집니다. 일방적 의사소통은 자존감을 망가뜨립니다. 순서 바꾸기가 의사소통의 형식적 측면과 관계되어 있다면, 관점 바꾸기는 삶의 재미와 직접적으로 관계됩니다. 기차의 발명으로 우리는 철도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세상이 달라지는 관점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 세상이 바뀌는 것은 엄청난 재미였습니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관점이 계속 바뀌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싫어하는 이야기는 군대이야기와 축구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자도 축구를 좋아한 적이 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여자들도 축구를 즐겼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중계하는 카메라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일단 골인이 되면, 전체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늘 높은 곳에서 찍은 장면을 보여줍니다. 다시 골대 뒤에서 골키퍼의 움직임과 골대를 향해 돌진하는 선수의 움직임을 비춰줍니다. 골이 골대 안으로 들어오면 그물이 출렁거립니다. 골을 넣은 선수가 기뻐하는 모습을 바퀴 달린 카메라로 쫓아가며 비춰줍니다. 중간중간 관중의 반응도 보여줍니다. 카메라가 많다는 것은 관점이 많아졌다는 의미입니다. 즉 관점을 바꾸면 재미가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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