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인타운에 소재한 한 어덜트 케어센터에 들렀다. 직원 모두가 분주해 보여서 다가가서 보니 다발로 사온 카네이션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번 주 어버이날에 한분한분께 꽂아 들이기 위해서, 카네이션 한송이와 약간의 안개꽃을 곁들여 정성스레 코사지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는 그때까지만 해도 어버이날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으니, 역시 필자는 불효녀가 맞나 보다.


    엄마는 3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80세의 나이에 대장암 수술과 12번의 항암 치료를 했기 때문에 절대로 괜찮을 리 없지만, 엄마는 통화를 할 때마다 늘 괜찮다고 말씀하신다. 혹여나 바쁜 딸이 엄마 걱정까지 할까 염려스러워 일부러 목소리를 가다듬고 더 상냥한 말투로 말씀을 하신다. 얼마전 한국에 사는 언니한테서 카톡이 왔다. 엄마가 배추 김치며 깍두기, 무나물, 호박죽을 해가지고 왔단다. 전날 자정까지 열심히 씻고 다듬고 무쳐서 가지고 왔다면서 카톡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면서 언니는 “엄마는 평생 박봉의 공무원 아내였지만 자식들에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같다”면서, 자기 딸한테 엄마처럼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내 기억 속의 엄마도 항상 그랬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계속 서울에서 유학하는 필자에게 두 달에 한 번씩은 소포 박스를 보냈다. 그 박스에는 양말, 속옷 그리고 사과와 배까지 알차게 들어있었다. 서울에서도 사 먹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사러 가는 수고를 덜어주고 싶었단다.


    지난해 여름에도 엄마의 사랑과 희생을 다시 한번 느꼈다. 당시 미국에서는 팬데믹이 거의 끝난 분위기였고, 한국에서도 외국인 방문을 심하게 저지하지 않는 분위기로 돌아오면서 온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래도 엄마가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항암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나름 철저하게 방역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출국 전에 코로나 백신을 5차까지 접종 완료했으며, 엄마를 만나기 전에 호텔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자가 코로나 진단을 하기도 했다. 물론 마스크도 잘 쓰고 다녔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행 중에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팬데믹 기간동안 얼마나 열심히 사회적 거리를 지키면서 나름 방역수칙을 지켜왔는데, 한국에 와서 덜컥 코로나에 걸리다니…’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 증상이 심하지 않아 처음에는 의심을 하지 못했는데,  점차 목소리가 변하면서  코로나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가 테스트를 했는데,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이다. 다른 가족 특히 면역력이 바닥인 엄마한테 전염이 될까 두려워, 테스트 결과를 보고 곧바로 짐을 싸서 집을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따라나섰다. 호텔에 아픈 딸을 혼자 둘 수 없다면서, 자신이 같이 지내며 직접 간호를 하겠다며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렸다.  갑자기 한국방문 몇 달 전 남편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가 생각이 났다. 필자는 남편을 마치 병균 덩어리를 대하듯하며, 지하실에 2주 동안 격리시켰다. 사람들은 5일이 지나면 전염성이 없어 괜찮다고들 말했지만, 진단기에 한 줄이 나올 때까지 얼굴도 안 마주쳤을 정도로 냉랭하게 대했던 것 같다. 필자는 또, 아들이 기침을 동반한 감기에 걸렸을 때도 코로나일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해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했을 정도로 비정한 엄마로 돌변했었다. 그런데 엄마는 달랐다. 자신의 몸 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혼자 호텔 방에서 아파할 딸만 생각했다. 결국 남편이 필자의 호텔 옆 방을 잡아서 돌봐주기로 하면서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있었다. 엄마는 이렇게 매번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을 보여주셨다.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세종대왕도 아니다. 바로 아버지이다. 38년 동안 국방부 소속으로 근무하면서 대한민국 훈장을 받고 퇴임을 하셨다. 하지만 필자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 훈장 때문이 아니다. 그는 다정다감한 말이라곤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결정판이다. 자칫 우리 4남매 중 한 명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단체로 엎드려 뻗쳐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버지의 체벌 철학은 남달랐다. 막내는 가볍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필자는 잠깐 엎드려 있고, 언니와 오빠는 동생들보다 오랫동안 벌을 섰던 것 같다. 큰 아이들에게 더 큰 책임감을 쥐어주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평소에 언니와 오빠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좋은 옷을, 새 장난감을 더 많이, 그리고 먼저 안겨주었던 것 같다. 필자는 어릴적 이런 단체 기합으로 인해서 많이 가질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책임감도 커져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알게 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언니와 오빠는 동생들에게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비록 이처럼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냈지만, 우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올곧은 성품을 배웠다. 


     그러나 부모라고 해서 모두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존경을 받고 싶으면 노력해야 한다.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경제적으로 무능력해도 자식들이 본받을 만한 어떤 한가지만 있다면 존경의 대상은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엄마가 처음이기에 모든 면에서 서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라도 다같이 그 한가지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어버이날 주간을 맞아, 세상 누구보다도 훌륭했던 각자의 부모님께 진심을 담아 공경하는 마음을 전했으면 한다. 올해가 함께하는 마지막 어버이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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