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4일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발발 1년이 되는 날이다. 이렇게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러시아는 푸틴 집권 이후 자신들이 일으키거나 개입한 전쟁을 모두 속전속결로 마무리하며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다. 예컨대 지난 2000년 푸틴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제2차 체첸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체첸을 러시아에 가장 충성하는 지역으로 바꾸었다. 2008년 8월에 발발한 조지아와 친러 성향 남오세티야 분리주의자 간 전쟁에도 참여하여 5일 만에 승리를 이끌었다. 2015년 9월에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여 아사드 정권이 현재까지 유지되도록 도왔고, 2020년 8월 벨라루스 대선 직후 부정선거와 루카셴코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반발해 벌어진 반정부 시위 역시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잦아들게 되었다. 또, 2021년 12월 말부터 시작되었던 카자흐스탄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소요사태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지원을 요청해 러시아 공수부대가 주축이 된 CSTO의 신속대응군이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되어 사태를 종결할 수 있었다. 아마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속전속결로 끝마치고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충실하게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푸틴의 기대는 전쟁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빗나갔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가 매우 강했고, 미국과 유럽은 단계를 높여가면서 첨단 무기를 제공하면서 군사력이 열세인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게 해줬다. 서방은 해외자산 압류, 러시아 금융기관 국제은행 간 통신협정 퇴출, 전략물자 수출 금지, 에너지 수입제한, 글로벌 기업의 러시아 시장 철수 등 강도 높은 제재를 통해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무력화하는 조치도 단행했다. 특히 이번 전쟁은 유럽에는 큰 전환점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극도로 신중한 외교안보 정책을 펼쳐온 전범국 독일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분쟁 지역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기로 한 원칙을 깼다. 또 200년 역사의 영세중립국 스위스는 EU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금융 제재, 러시아 항공기 영공 통과 차단 조치를 추진했다. 여기에 군사적 중립국인 스웨덴과 핀란드도 오랜 금기를 깨고 우크라이나에 군사장비와 전투식량 등 군사물자를 지원한 것은 물론, 나토 가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 세계가 미국 등 서방 민주주의 진영 대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등 권위주의 진영으로 양분돼, 일종의 ‘대리 세계전쟁(a proxy world war)’을 벌이는 양상이 되었다.  


    러시아의 침공은 전쟁 당사자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엄청난 고통과 부작용을 초래했다.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우크라이나 곡창 지대에서 생산한 곡물 수출이 러시아의 흑해 항구 봉쇄 때문에 타격을 받으면서 국제 농산물 가격이 치솟았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각국 정부의 확장 재정 정책으로 가뜩이나 물가가 불안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정치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황이 불리해질 때마다 핵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2차 대전 당시 일본에 투하된 원자 폭탄에 이어 이번에도 핵무기가 동원될 경우 3차 대전으로 비화하고 인류가 공멸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반도 정세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북·중·러가 결집하면서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러 균열 국면을 이용하려는 북한이 러시아에 각종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고 미국 정보 당국이 폭로했고, 한국은 미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돕는 모양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은 겉으로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남북한까지 전쟁의 구심력에 끌려들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비핵화가 더 어려워지고 김정은 정권의 역내 도발 위험을 키운 것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에 끼친 악영향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온 유럽대륙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났다. 러시아의 영토침략은 우크라이나인들 뿐 아니라 주권을 옹호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거센 저항을 불렀다. 전쟁 발발 1년 양측 사상자는 20만명이 넘었다. 우크라이나 어린이·여성 등 민간인 5000명 이상이 희생됐고 인구의 30%가 난민 신세로 떠돌고 있다.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초래한 비극적인 전쟁이 끝날 조짐은커녕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뚜렷한 승자도 없이 희생만 키우는 소모적인 전쟁을 이제라도 멈춰 세워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가 3년 만에 10초 앞당겨졌다. 운명의 날 시계는 시카고대학에서 발행하는 핵과학회지 〈불리틴 The Bu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의 표지에 실려 있는 일러스트 시계이다. 핵전쟁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알려준다. 지난달 미 핵과학자회(BAS)는 2020년 1월 자정까지 100초로 설정된 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에도 3년 간 움직이지 않던 시계의 분침이 10초 앞당겨진 이유가 “주로 우크라이나 전쟁 탓”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강제징집 동원령이 내려진 것으로 보아 푸틴은 전쟁을 당장 끝낼 의사가 없다. 대상은 범죄 전력이 없는 60세 이하의 남성이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 심하다. 전장에 나가기도 전에 사기는 이미 떨어지고 있다.  군대는 사회의 특성과 가치를 반영한다. 장비, 군사교리, 훈련, 지휘력 모두 군대에 중요하지만 전투력의 핵심은 국가의 성격에서 나온다. 푸틴의 권위주의 도둑정치는 국민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전쟁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국제사회는 러시아 군대가 철수할 때까지 평화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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