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 … 화폐가치 하락

    17일 SK커뮤니케이션즈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4일까지 성인 남녀 6044명을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43%가 세뱃돈 적정선으로 5만원을 꼽았다. 이어 29%가 “안 주고, 안 받겠다”고 답해 세뱃돈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그 뒤로 1만원을 꼽은 응답자가 15%, 10만원을 꼽은 사람이 10%였다. 안지선 SK컴즈 팀장은 “경기침체 여파와 팍팍해진 가계살림에도 불구하고 올 설 명절 역시 ‘신사임당(5만원권)’이 대세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5만원권이 세뱃돈 대세로 자리 잡은 건 ‘물가 상승=화폐가치 하락’과 관련 있다. 과거대로 준다고 해도 물가를 반영한 화폐가치는 많이 떨어졌다. 통계청 화폐가치 계산기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5만원은 10년 전엔 4만2600원, 20년 전에는 3만1350원으로 나타났다. 세뱃돈을 10년 전보다는 17.4%, 20년 전보다는 59.5%는 올려야 과거만큼 ‘돈값’을 한다는 얘기다. 인크루트가 최근 8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2.8%는 명절 비용 지출이 “매우 부담된다”고 답했고, 34.2%는 “약간 부담된다”고 응답했다. 또 물가 수준을 고려한 올 명절 예상 지출 가운데 ‘가족 용돈’에는 평균 38만원, 설 선물 비용에 평균 40만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9년부터 발행된 5만원권이 경조사·세뱃돈의 기본 단위를 올렸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새로운 고액권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실제 5만원권이 출시된 뒤 시장조사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만원권이 축의금이나 세뱃돈의 단위를 더 커지게 했다’는 데 57.3%의 응답자가 동의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일본의 1만엔, 미국의 100달러에 대응하는 10만원권의 발행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진척되지 않는 이유다. 고액권에 대한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다. 설·추석 등 명절을 중심으로 5만원권을 비롯해 신권을 선호하는 현상이 유독 심해서다. 한은은 16일부터 각 지역 시중은행에 공급할 설 자금을 방출·운송했는데 일부 지역본부에선 신권 교환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2017~2021년 기준 연평균 1100억원씩 신권을 발행하는 데 쓰였다. 주요 은행 지점에선 신권 교환에 매수 제한을 두고 있다. 나간 돈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화폐발행 잔액은 2016년 말 97조3822억원에서 지난해 말 174조8622억원으로 늘었다. 특히 5만원권이 잘 돌아오지 않는다. 2021년 기준 90~100% 환수율을 보이는 1000원·1만원권과 달리, 5만원권은 환수율이 17.4%에 그쳤다. 고액권이 지하경제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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