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버삼성장로교회 이동훈 담임목사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이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교회와의 관계, 교우들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이 로마 감옥에서 쓴 책이 디모데후서입니다. 이 책은 사도 바울 선생님이 생을 마감하면서 자신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회고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분류해 보면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시작은 좋은데 끝이 안 좋은 사람”, 둘째는 “시작은 안 좋았는데 끝이 좋은 사람”, 셋째는 “시작과 끝이 다 좋은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에는 사도 바울 선생님이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을 동시에 다 언급하는 본문이 등장합니다.

 

     첫째로 “시작은 좋은데 끝이 안 좋은 사람”의 유형으로 ‘데마’가 등장합니다. 데마에 대하여 사도 바울 선생님은 이렇게 언급합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고”(디모데후서4:10). 데마라는 이름은 ‘인기 있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름처럼 세상인기와 세상 낙을 따라간 사람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바울을 통해 복음을 접하고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의 일에 헌신을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님이 두 번째 수감되었을 때 석방될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처형이 눈앞에 다가오자 그의 마음에는 은밀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바울 선생님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데살로니가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바울 선생님이 짧게 언급한 기록을 보면 그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예수님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데마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 가도 자신에게 이득이 올 것 같지 않으면 야멸차게 배신을 때리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시작은 안 좋았는데 끝이 좋은 사람”의 유형으로 ‘마가’가 등장합니다. 이 마가에 대한 사도 바울 선생님의 언급이 이렇습니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디무데후서4:11). 마가라는 이름은 ‘예의가 바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름처럼 실수를 해도 한 번으로 끝나고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 신사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소아시아지방으로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동행했는데 불행하게도 그는 여행 초반에 팀을 이탈하여 예루살렘으로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마가를 다시 합류시키는 일에 바울 선생님의 단호한 반대를 받았고 바울 선생님과 바나바가 다투고 헤어지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바울 선생님이 로마 감옥에 두 번째 수감되었을 때 마가를 매우 그리워하며 빨리 자신의 곁에 데려와 줄 것을 디모데를 통해 부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마가는 자신의 지난 행동을 크게 뉘우치고 다시 한번 주님께 헌신을 다짐하고 바울과 뜨겁게 연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가처럼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한 후에 그 실수로부터 돌이키느냐, 계속 실수를 반복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돌이키기만 해도 이전의 실수들을 없는 것처럼 여겨 주시는 은혜가 우리 주님의 은혜요 사랑 아닙니까? 우리가 늘 죄짓고 죄송하고 면목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으로 다시 나와 죄와 허물과 실수에서 돌이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울 선생님이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전에는 무익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유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께 돌아와 그 품에 안기기만 하면 우리 주님은 유익한 자로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시작과 끝이 다 좋은 사람”의 유형으로 ‘누가’가 등장합니다. 누가에 대하여 바울 선생님은 이렇게 짤막한 말로 언급합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디모데후서4:11).  그의 이름은 ‘빛나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가 보여준 위대한 점은 무엇보다도 시종여일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바울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결코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절대로 배신하는 법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시작과 끝이 다 좋은 사람”입니다. 누가와 같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2023년 한 해 다른 사람들 곁에 누가와 같은 사람으로 서 계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3년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시겠습니까? 누가와 같은 사람들은 못 되더라도 마가와 같은 사람들은 되십시오. 그러나 데마 같은 삶은 사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또 다른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있어서 해가 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입니다. 셋째는 “있어서 늘 유익이 되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 선생님은 1장 말미에서 ‘오네시보로’(디모데후서1:16)하는 사람을 등장시킵니다. 이름의 뜻이 뭔 줄 아십니까? “유익을 가져오는 자”입니다. 부모는 누구나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의미 있는 이름을 짓고 그 이름대로 살아 주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네시보로는 이름값을 하고 산 사람이 아닙니까? 그는 마가처럼 바울 선생님이 하고 있는 일(나의 일), 즉 복음전하는 일, 하나님 나라의 일에 유익한 자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 해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사십시오. 오네시보로처럼 여러분 가정에, 이웃들에게, 교회에, 우리 주님의 일에 유익을 가져 오는 또 다른 마가로 오네시보로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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