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선교회 조완길 목사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인 빈 살만이 한국을 다녀갔다. 그는 네옴 시티의 청사진을 가지고 와서 한국 정부와 투자 협력을 논의했다.  그리고 한국 기업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기업과 계약, 양해각서를 주고 받았다. 제2의 중동붐이 예상되는 전조라고 생각한다. 네옴이라는 이름은 새로운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Neo와 미래를  뜻하는 아랍어 Mustaqbal의 첫 글자 M을 합친 단어이다. 빈 살만이 구상 중인 네옴시티는 사우디아라비아 북부 타북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카바만에 가까운 지역이다. 필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역할 당시 네옴시티 지역을 세 차례 방문한 바가 있는데 타북 중심도시 근교는 비옥한 땅이어서 밀 농사가 잘되고 과일 농사도 잘되었으나 타북의 북쪽은 거친 사막과 암석으로 이어지는 산악지역이었다. 그곳은 성경이 소개하고 있는 미디안 지역이기도 하다.  그곳에 서울의 44배에 달하는 탄소 제로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빈 살만의 야심찬 네옴 신도시 건설이 완성되면 두바이보다도 더 위대한 사막의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빈 살만이 네옴의 구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우디아리비아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와 관광 특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빈 살만이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동력은 그를 지지하는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구수가 삼천오백만명 정도인데 그중에 14세에서 44세까지의 젊은 계층이 이천육백만에 이른다.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대한민국과는 대조적인 사회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코란에 명시된 대로 일부다처제와 다산의 원칙에 의한 출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되고, 수용하면서 BTS와 같은 세계적인 그룹을 초청해서 남녀가 함께 참석할 수 있는 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필자가 리야드에 거주할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변화의 주체는 인구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고 있는 젊은이들이다. 


    그러나 변화가 순풍을 타고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변화를 싫어하고, 견제하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과 반정부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건국될 당시 건국의 아버지인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 Muhammad Ibn Saud) 가 와하비야 운동의 종교지도자인 무함마드 이븐 압드 알 와합(Muhammad ibn Abd Wahab)을 디르이야(al Diryya)에서 만나 자신은 코란의 가르침과 예언자의 언행과 전통에 근거한 통치 이념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와합과 동맹을 맺었다.  그후 이븐 사우드는 종교개혁가로부터 ‘이맘’의 칭호를 받았고 종교개혁가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 혼인 동맹을 맺으며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했다. 


    그래서 빈 살만 아버지의 형제들이 왕으로 재직할 때에는 종교지도자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이슬람 율법을 준수했었다. 그런데 빈 살만 왕제자는 개혁의 이름으로 젊은 층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에 빈 살만 재단을 설립해서 청년들이 경영학, 문학, 과학기술 등 다방면의 학문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하였고, 관련 소질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왔다. 2017년에는 여성들이 운전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아바야를 벗게 했다. 2018년에는 여성의 영화관 출입도 합법화했다. 그리고 종교 경찰의 체포 권한을 없애고 여성에 대한 남성의 후견인 역할도 상당 부분 삭제했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은 페미니스트들과 젊은이들에게는 환영받는 일이지만 수구 세력인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불만의  요소가 되고 있다.  그들은 이집트의 이슬람형제단을 비롯해서 원리주의를 지향하는 무슬림 단체들과 연계가 되어 있다. 1995년 12월에 리야드에서 미군들이 사용하고 있던 빌딩에 폭탄테러가 일어난 것도 무타와(종교경찰)들의 소행이었다. 또한 빈 살만의 주변에는 정적들도 포진되어 있다. 그 하나는 초대 국왕 사우드가 건국할 당시 아라비아에 거주하고 있던 부족 국가들을 점령하면서 발생한 원한이다.

   

    지금도 왕정에 도전하고 있는 부족은 까흐탄(Qahtan), 우타이바(Utaiba), 하룹(Halub) 그리고 샴마르(Sammar) 부족이다. 그 부족들은 나지드 지역과 메카 지역을 통치하다가 사우드가에 점령당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1960년대 말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의 영향을 받아 조직된 나세르 아라비아 반도 인민 연맹(Nasserist Arabian Peninsula People’s)도 있다. 이 조직은 북부 샴마르 부족에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1979년에 메카를 점령하기도 했으며, 1980년에는 약 500여명의 반군으로 무장을 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빈 살만의 일부 사촌 형제들이 빈 살만의 정적이다. 빈 살만이 왕위 계승 과정에서 친위 부대를 이용해 자신보다 왕위 계승 서열이 높았던 사촌형 무함마드 빈나예프를 감금하고 왕세자 자리를 빼앗았으며, 왕세자가 되고 나서 권력 안정을 위해 자신에게 도전할 만한 유력한 왕자들 수백 명을 호텔에 가두고 재산을 몰수했다. 대외적으로 예멘 공습 등 충동적인 군사행동과, 2016년 이란과의 국교 단절을 선포하는 등 그의 과격하고 예측 불가한 대외 정책도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빈 살만이 상기 서술한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서 탈 석유화 추진도, 네옴시티의 성공 여부도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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