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아스완에서 아부심벨을 가기 위해 새벽2시에 길을 나섰다. 이집트의 낮 기온은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로 덥기 때문에 모든 활동은 오전10시부터 오후4시까지 중단된다. 가게도 문을 닫고, 관공서도 문을 닫고, 기차역도 더우면 문을 닫을 때가 허다하다. 얼마나 더우냐고 물어보면, 청바지를 빨아서 바로 입고 다녀도 30분 정도면 마른다. 그래서 새벽 일찍부터 아부심벨을 보기 위해 숙소에 있는 가이드와 함께 봉고차를 타고 출발했다.

 참고로 아부심벨 신전은 고대 이집트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1960년대 아스완 댐의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국제적인 지원으로 원래 위치보다 65미터나 높은 위치로 본 모양 그대로 옮겨졌다. 사실 이집트에서는 이런 유물과 유적들이 워낙 많아서, 이것 하나쯤 수장되는 것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전세계가 공을 들여 원전 그대로 옮기기까지 한 것은 그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단한 곳이라고 하기에 빡빡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큰마음 먹고 눈도장을 찍기 위해 나선 길은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족히 4시간 정도는 달렸다.  가는 길에 허름한 마켓을 본 것이 전부였다. 차에서 잠시 내려 마켓의 화장실에 들렀다. 칸막이도 없는 푸세식이었다. 난감했다. 콜라를 사려고 물어보니 2달러라고 해서 그냥 돌아서 나왔다. 비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아부심벨까지는 별 탈 없이 도착했다. 하지만 일은 돌아오는 길에 터졌다. 사막 한 가운데서 타고 있던 봉고차가 그만 퍼져버렸다. 한 시간을 버텼지만 점점 더위와 목마름으로 공포가 엄습해왔다.

 일단 물 한 모금만 마셨으면 좋겠다면서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다행히 지나가던 트럭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트럭은 우리를 그 마켓까지 데려다 주었다. 말이 마켓이지 시골 구멍가게만도 못한 곳이었다. 그래도 반가웠다. 정오가 다 되었다. 뙤약볕은 최고조에 달했고, 목은 말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 됐다. 그곳에서 파는 유일한 음료수인 콜라를 2달러를 주고 한 병 샀다. 아침에는 비싸서 포기했던 콜라를 그때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냉큼 샀다. 한 병으로 성에 차지도 않아 한 병을 더 마셔야 했다. 그런데 첫 번째 콜라는 달러로 환산해 보면 2달러 정도였는데, 두 번째 콜라는 5달러를 요구했다.  5분전에 산 콜라가 2배 이상 가격이 오르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어서 필자가 잘못 알아들은 줄 알고, 처음 콜라와 같은 가격을 지불했다. 그러자 가게 주인은 내 손에 쥐어진 콜라를 도로 빼앗아가면서 손을 저었다. 안 판다는 뜻이다. 당시 이집트에서는 3달러 정도면 별 다섯 개짜리 호텔 급은 아니어도 웬만한 모텔 수준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었다. 물론 아침도 포함된 가격이다. 그러니 콜라 하나가 이렇게 비싸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살 때마다 가격이 틀려지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게 주인은 사기 싫으면 그만 두라는 식이다. 결국 필자는 콜라 두 병을 7달러에 샀다. 너무 목이 말라 10달러를 내고도 사먹어야 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이틀 치의 숙박비를 날린 셈이다. 이 마켓의 염치없는 주인은 전형적인 안면몰수 형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시절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더하다. 돈 빌려 달라고 엎드려 사정하다가도 일단 돈만 빌리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되려 큰소리를 친다. 서서 빌려주고 엎드려서 돈 받는다는 말이 딱 맞다. 빚쟁이에 쫓기고, 먹고 살기 막막하다고 징징거려서 덴버에 정착하도록 도와줬더니, 이제는 밥 좀 먹고 산다고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처음에 식당 장사 시작하면서 맛있게, 최고의 서비스를 입버릇처럼 강조하더니, 이제는 주객이 전도된 곳도 더러 있다. 오랫동안 렌트비를 내지 않는 테넌트가 더 큰 소리를 친다. 불경기라는 무기를 들고 나와 마치 돈 있는 사람은 손해를 봐도 괜찮지 않냐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도 펼친다. 자기들 필요에 의해 광고를 의뢰해놓고는, 아무런 연락 없이 한 달이 지나도 광고비를 안내고, 두 달이 지나도 안내고, 석 달이 지나도 내지 않아 내라고 하면 오히려 화를 내면서 자기들 지출부터 해결해야 한단다. 지금은 어려우니 다음에 주겠다면서 서로에게 양해를 구하는 대화가 오가야 함이 정상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이렇게 판이하게 다를 때마다  필자는 이집트 그 사막의 마켓 주인이 생각난다. 눈도 깜빡 하지 않고 말을 바꾸고, 터무니 없는 것을 약속하고,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무조건 아웃이다. 그때부터는 서로가 적이 되고 죽일 놈이 되어, 그 적을 쳐 부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 사막의 아저씨는 분명 필자를 다시 만나지 않을 관광객으로 생각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곳 콜로라도 한인 사회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갈 이웃 사촌들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콜라를 팔았던 그 인정머리 없는, 나밖에 모르는 이집트 사막의 마켓 주인처럼은 되지 말았으면 한다. 올챙이 시절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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