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국제적으로 높다는 것은 넷플릭스를 통해서 증명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미국의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OTT 기업으로 인터넷(net)+영화(flicks)에서 파생된 이름인데, 본사는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남쪽의 로스가토스와  헐리우드에 위치해있다. 미국 내 프라임타임 인터넷 트래픽의 3분의 1을 넷플릭스가 사용하고 있다는 CNN의 보도가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으며, 방송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물론 한국사람들에게도 인기다. 넷플릭스를 모르면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세계에서 인기있는 TV 프로그램과 영화 대부분이 올라와 있다. 한국드라마로는 오징어 게임이 작년에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환혼, 스물다섯스물하나, 이상한변호사 우영우까지 한국 드라마들이 줄줄이 넷플릭스의 탑 순위권에 들었다. 넷플릭스에서도 한류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K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가운데 현지 정서를 거스른 스토리 전개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1위를 줄곧 달려온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마지막 두 회를 앞두고 플랫폼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정서경 극본, 김희원 연출의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가난하지만 우애있게 자란 세 자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맞서는 이야기를 그렸다. 

 

     지난 3일 베트남 정보통신부 산하 라디오·방송·전자정보국은 '작은 아씨들'을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삭제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 보냈다. 베트남 당국은 드라마의 3화와 8화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역사를 왜곡하고 국가를 모욕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현지 언론법과 영화법 등을 위반했다며 삭제 요청 이유를 밝혔다. 


    베트남 당국이 문제가 된다며 지적한 장면은 크게 두 부분이다. 하나는 3화에서 인경(남지현 분)과 종훈(강훈 분)이 살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의문의 푸른 난초를 찾던 중 이 난초에 대해 “베트남의 유령이라고 불리며, 베트남 전쟁 중 미군에 의해 미국에 들어왔다”고 말한 장면이다. 또 다른 장면은 8화에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이자 사조직 정란회를 세운 원기선 장군이 전쟁 중 무공을 세운 것으로 묘사된 대목과 또 다른 참전군인이“한국 군인은 1인당 베트콩 20명을 죽였다”,  “(비밀 작전을 수행한) 그 사람들은 100대 일”“한국 군인은 베트남전 영웅이다” 등의 대사를 하는 장면도 문제삼았다. 이에 대해 베트남 누리꾼은 SNS를 통해 “한국군 한 명이 베트콩 100명을 죽였다”는 드라마 장면에 빨간색으로 X자를 그린 캡처 사진을 공유하거나 베트남어와 영어로 ‘그게 자랑스럽냐, 역사를 왜곡해 베트남 국민을 비하한 제작진은 사과하라’등의 항의글을 잇따라 올렸다. 베트남 넷플릭스 삭제와 관련해, ‘작은 아씨들’의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향후 콘텐츠 제작에서 사회적·문화적 감수성을 고려해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사과했다. 


     베트남 넷플릭스는 전에도 베트남 정부의 요청에 따라 작품을 삭제한 바 있다. 기존에 삭제된 작품들은 대부분 중국과 베트남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를 중국 영토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한국 작품이 역사 왜곡 등을 이유로 삭제된 것은‘작은 아씨들’이 처음이다.


     지난달 전세계 넷플릭스 2위에 오른 드라마 ‘수리남’도 남미 국가 수리남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드라마는 1990년대 말~2000년대 초까지 수리남을 무대로 활동하다 붙잡힌 실존 한국인 마약상 조봉행과 체포에 도움을 준 민간인 K씨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다. 민간인 역을 맡은 배우 하정우가 '코리아드라마어워즈에서 대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 있는 드라마였다. 그러나 수리남 국가를 직접 사용하면서 나라 전체가 마약 산업과 결탁한 것처럼 그려져 해당 국가 정부 차원의 반발을 불렀다. 수리남 외교 장관은 “제작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이 드라마가 자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든다고 비난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인구 60만에 불과한 남미의 작은 나라가 마약상의 소굴로 세계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데 대한 항의이자 불만이었다.  ‘작은 아씨들’때와 달리 넷플릭스나 제작사는 이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거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공개 이전에도 국가명을 드라마 제목으로 삼은 점을 우려해 우리 외교부가 중재에 나섰고, 그 결과 영문 제목을‘나르코스 세인츠’(Narcos-Saints, 마약상-성자)로 수정했다. 그럼에도 수리남 측이 문제를 제기하자 한때 현지 교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까지 했다. 이후 분위기는 비교적 잠잠하지만 K 콘텐츠의 표현과 묘사에 보다 세심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지난 6월 공개된 한국판‘종이의 집’에서 여주인공 도쿄(전종서)는 이름을 도쿄로 지은 것에 대해 “나쁜 짓을 할 거잖아?”라고 말한다. 원작에는 없는 설정으로‘일본은 나쁜 짓을 한다’는 반일 감정을 난데없이 드러내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지난해 방송된 ‘라켓소년단’도 배드민턴 국제 경기를 주관하는 인도네시아를 자국의 승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꼼수를 쓰는 나라처럼 그려 현지 시청자의 분노를 샀다. 2년 전 YG엔터테인먼트는 블랙핑크‘하우 유 라이크 댓’뮤직비디오에 힌두교 신 중 하나인 가네샤 이미지를 함부로 사용했다가 인도에서 비판이 일자 뮤직비디오를 수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어찌보면 이러한 지적들은 드라마의 맥락상 큰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작은 아씨들’의 경우, 사실 미국이 제작한 베트남전 영화에서도 베트남인들은 종종 물건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그들이 즐겨보는 한국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만약 일본이 만든 영화에 일본인들이 조선을 발전시켰다고 으스대면서 말하면 과연 우리의 기분을 어떨까. 한국 드라마가 전세계에 나가는 만큼 이런 부분은 조심을 했어야 한다. 실제로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을 이긴 자국의 전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런 부분이 드라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다. ‘오징어게임’이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고 에미상 시상식을 휩쓰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K 콘텐츠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K 콘텐츠가 200개 가까운 수많은 나라의 시청자를 겨냥한다면 작품 눈높이 또한 그들에게 맞춰야 한다. 드라마 한 편이 의도치 않게 국가 간 관계나 감정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음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한국 시청자의 인식과 정서는 반영하는 한편, 다른 나라·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필히 담아야 하는 때가 왔다. 이를 창작의 자유와 조율하는 것은 또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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