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한용구 목사

◈마가의 사명 / 사도행15장36~41, 베드로전서 5장13절 

‘들판이 아름다운 이유’라는 시가 있습니다. 몇 구절을 설명을 더하여 소개해 봅니다. 
들판이 저렇게 아름다운 이유는?
아무데서나 살지만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 들풀이 있기 때문이다.
쑥은 쑥대로 냉이는 냉이대로 힘을 다하여 향기를 발하며 산다. 벌과 나비가 알아 주지 않아도, 장미와 백합과 비교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힘을 다하여 향기를 발하며 산다.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들판이 아름다운 것이지요. 하나님이 주신 분깃대로 그 사명대로 힘을 다하니까 아름다운 것이지요. 예수 믿으면 당장 사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내가 곧 사명임을 깨닫게 되지요. 예수 믿으면 내가 가진 것이 곧 사명이지요. 내게 있는 재능, 물질, 그리고 시간이 사명임을 알게 되지요. 예수 믿는 학생은 공부가 사명임을 깨닫게 되고, 예수 믿는 어른들은 직장과 사업의 현장이 사명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므로 팔자로 살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한 사명으로 살지요. 사명으로 사느냐? 팔자로 사느냐? 구분하는 일은 간단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올라오면 그건 팔자로 산다는 뜻입니다. 따지고 계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명으로 사는 자는 감사하고 즐거워하지요.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요한이라고도 하지요.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고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입니다. 마가는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그 옛날 120명이 들어갈 다락방이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부잣집 아들로 곱게 자란 마가가 바나바와 바울이 1차 선교 여행을 떠나는 데 함께 떠났습니다. 그러니 견디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중간에 돌아와 버렸습니다. 선교하는 일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지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힘이 빠질 수 밖에요. 다시 2차 선교 여행을 떠날 때, 삼촌인 바나바는 마가에게 한 번 기회를 주자고 했지요. 그러나 성격이 칼 같은 바울은 단칼에 거절해 버렸습니다. 마가의 문제로 바나바와 바울은 심히 다투었고 결국 갈라서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마가의 갈등은 얼마나 컸을까요? 나 때문에 두 분이 갈라서고 하나님의 일이 엉망이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마가는 베드로를 따라 다니지요. 베드로가 누굽니까? 주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한 사람이니 마가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고 극복하도록 도왔을 것입니다. 실패해 본 사람이 실패한 사람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마가의 사명은 바로 자신의 죄책감, 실패감을 극복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지요. 그리고 마가는 베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일을 시작합니다. 베드로는 헬라말을 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마가가 통역을 하지요. 마가의 중요한 사명은 곧 베드로의 부족함을 채워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선교사님들을 돕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우면 우리도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니까요. 마가가 수십 번 통역을 하다 보니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다 외워버렸습니다. 그래서 기록한 성경이 마가복음이었습니다. 마가복음은 극렬한 핍박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생수가 되지요. 소망의 말씀이 되지요. 초대교회를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된 거지요. 결국 바울도 마가를 동역자로 인정하게 되지요. 마가의 사명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마가의 사명은 자신이 잘못한 죄책감을 극복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일,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마가의 사명이었습니다. 오늘도 마가가 감당한 사명을 묵상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팔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감으로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잘될 때, 더 조심하기! : 어느 분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운전면허를 따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따님이 시집갈 때가 되자 이제 나도 운전을 해야 한다며 다시 도전을 했습니다.  열심히 학원에 다니시더니 드디어 면허 시험에 합격을 하고 면허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던 어머니는 차를 사 놓고도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에 드디어 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머니의 직장까지는 차로 겨우 10분 정도의 거리인데 그날은 너무 이상했습니다. 아침 10시가 되도록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열 한 시가 되어서야 전화를 받았는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집에서 차를 갖고 나간 어머니는 무려 11시가 되어서야 직장에 도착했다는 겁니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6시간이나 걸린 겁니다. 너무 떨려서 시속 10킬로로 운전하는데, 출근 시간이 가까워오자 점점 차가 많아져서 끼어들지도 못하고 3시간을 직진만 하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겨우 차를 돌려서 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10분 거리면 갈 수 있는데 6시간이 걸렸다니, 그 날, 어머니는 몸살로 죽게 앓았습니다.  그 뒤로도 출퇴근하는 데 두 시간씩 걸리는 건 보통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다른 지역까지 가셔서 전화를 걸어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아주 능숙한 운전자가 되셨습니다. 이제는 따님이“엄마 속도 좀 줄여요.”라는 잔소리를 할 정도로 빨리 달리십니다. 아마도 엄마의 힘이 모든 어려움을 넘어서게 한 것이 아닌가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10분 거리를 6시간 걸릴 때 보다 운전이 능숙해진 지금이 더 위험한 것은 아닐까요? 인생이란 어려울 때보다 평안할 때가 더 위험한 법이니까요. 방심하기 쉽지요. 평안할 때, 익숙해졌을 때 더 조심하고 자신을 잘 다스리는 일은 늘 마음에 새겨야할 지혜 중에 지혜지요. 

▷여보, 언제 오는 거여 : 아내가 딸 아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보름 동안 그곳에 머물 것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는 자유인이 되었다. 얼굴에 미소를 감출 수 없구나! 옷을 벗어 구석에 박아 놓아도 좋고 소파에 누워서 리모콘을 맘대로 돌리는 자유, 으와아! 이 자유로움! 으으! 설거지 할 게 싸여 가지만 하루 날 잡아서 하면 되고, 라면, 언제든지 끓여 먹을 수 있으니 좋고 꼭 샤워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데 아내가 집을 떠난 지 꼭 사흘 째 되던 날, 이상하다. 허전하다. 뭐가 그립다. 아니 외롭다. 누구를 부르고 싶은 데, 아내가 떠났다고 좋아하던 내가 이게 무슨 꼴인가 내가 봐도 불쌍하다. 전화를 걸었다“여보, 언제 오는 거여?”하이고! 내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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