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렇겠지만, 필자가 영국을 여행했을 때 런던의 버킹엄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을 보는 것은 가장 인기있는 관광코스였다. 여름에는 매일 오전 11시경에 근위병 교대식을 하는데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명당을 차지하려는 사람들로 1시간 전부터 북적거린다. 필자도 교대식을 보기 위해 그늘도 없는 뙤약볕에서 한시간을 기다리느라 팔이 빨갛게 익었던 기억이 난다.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근위병 교대식 장면은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여길 만큼 근엄하고 멋있었다. 왕실 근위병 교대식은 유럽 부자들의 도시 국가인 모나코에서도 매일 진행된다. 하지만 런던의 정궁(正宮) 버킹엄 궁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분위기이다. 영국 근위대 교대식의 위엄과는 비교대상이 아니었다. 대영제국의 역사가 이루어진 곳, 동화 속 주인공인 왕과 여왕, 왕자와 공주가 살고 있는 버킹엄 궁전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행객들은 충분히 흥분되었다.


      이 오랜 전통과 권위를 가진 버킹엄 궁전의 주인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본명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이 향년 96세의 나이로 지난 8일 서거했다. 여왕은 지난해 4월 남편 필립공의 사망 이후 급격히 쇠약해진 모습을 보였고, 지난해 10월 병원에 하루 입원한 후 외부 활동을 자제해 왔다. 올해 2월에는 찰스 왕세자를 만난 뒤 신종 코로나에 확진돼 한동안 외출을 못 하기도 했다. 영국 언론들은 “여왕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원인으로 암 발병 가능성과 함께 신종 코로나 후유증 등이 언급되고 있다”고도 전했다. 사망 당시 여왕의 곁에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장남 찰스 왕세자와 부인 카밀라, 왕위 계승 서열 2위 윌리엄 왕세손 등이 함께 있었다. 그날 오후 6시 30분 버킹엄 궁전은 조기를 게양해 여왕의 서거를 알렸고, 73세의 찰스 왕세자가 즉시 왕위를 물려받아 ‘찰스 3세’로 즉위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날까지 만 70년 127일을 재위해 영국 군주 중에서는 최장, 세계 역사에서는 두번째로 오래 통치한 군주로 남게 됐다. 참고로 역사상 최장 재위 군주는 4세에 등극해 72년간 통치한 프랑스 루이 14세다. 지난 2012년 6월 엘리자베스 2세는 64년간 영국을 통치했던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다이아몬드 주빌리’(재위 60주년)를 맞았고, 올해 6월에는 재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를 치렀다. 그는 2012년 즉위 60주년을 맞아 실시한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국왕’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사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태어날 때부터 왕이 될 운명은 아니었다. 그의 부친은 선대 왕의 둘째 아들이었고, 후계 서열 1위 왕세자는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였다. 하지만 에드워드 8세는 즉위 직후 미국의 평민 출신 이혼녀 월리스 심슨 부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왕위를 포기하고 사랑을 찾아갔다. 이에 따라 에드워드 8세의 동생인 조지6세가 왕위를 승계하게 되었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녀의 나이 10살에 승계 서열 3위에서 1위로 올라서게 되었다. 아버지 조지 6세는 심한 말더듬증을 갖고 있었지만, 왕위를 굳건히 지켜 나치 독일과의 2차대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조지 6세는 2차대전이 끝난 지 얼마되지 않는 1952년 2월 폐암으로 갑작스럽게 서거했고, 엘리자베스 2세는 예상보다 일찍 영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56개국이 가입한 영연방의 군주로 즉위했다. 재위 기간 과거 대영제국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통치 영역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사망 때까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베이도스, 바하마 등 15국(총인구 1억2900만명)의 국가 원수였고, 오늘날 지구상에서 2개국 이상의 독립국을 다스렸던 유일한 군주였다.


    그리고 여왕은 언제나 대중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사였다. 찰스 왕세자 등 세 자녀의 이혼,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사망 등 갖가지 왕실 스캔들과 불운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몸에 밴 겸손함과 온화한 미소, 돋보이는 유머 감각, 철저한 자기 관리로 70여 년간 영국과 영연방 국민의 한결같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여왕은 찰스 3세와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등 3남 1녀를 낳았고, 이들로부터 8명의 손자와 12명의 증손자를 얻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임기간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같다. 1965년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까지 여왕의 시대에 집권한 대통령이다. 한국 대통령 중에는 모두 6명이 영국 방문시 여왕을 만났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이 깊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대통령선거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의 객원교수로 재직했었다. 이후 대통령이 되면서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공식초대했고, 이에 여왕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의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을 크게 응원했고, 이후 인상적인 한국 방문에 대한 기억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한국 대통령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버킹엄 궁으로 초대한 바 있다.


     여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 군주제의 원칙에 따라 정치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윈스터 처칠(1995), 마거릿 대처(1979), 존 메이저(1990), 토니 블레어(1997), 고든 브라운(2007), 데이비드 캐머런(2010), 테레사 메이(2016), 보리스 존슨(2019), 리즈 트러스(2022) 등 영국 총리 15명을 거쳤다. 이같은 엘리자베스 2세의 통합적 사고는 어려운 시기에 영국 내 정치적 정서적 안정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상징이자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제 떠났다. 그는 전쟁으로 거의 무너져 내린 나라의 왕좌를 물려받았고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획기적으로 변한 시기에 단단한 바위처럼 자리를 지켰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왕실의 의무를 다하며 금욕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모습으로 대중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여왕이 된 뒤 세상은 급변했지만, 수많은 사람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변하지 않는 애국의 상징으로 여겼다. 변화의 시대에 그는 안정의 상징이었고, 변함없는 품위로 자국을 섬겼다. 이러한 여왕의 영면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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