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교회 허성영 담임목사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한 미군이 북베트남(월맹)군에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미 해군 특수부대에 차출되어 참전했던만큼 건장하고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포로가 된 후 수용소내의 열악한 환경과 음식으로 인해 체중이 기존보다 크게 줄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언젠가 포로에서 고향으로 귀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월맹군의 명령과 지시를 꼬박꼬박 잘 따랐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모범수였던 것이지요. 어느 날 포로 수용소 사령부로부터 포로생활이 양호한 포로는 6개월 내에 석방될 것이라는 발표를 듣게 됩니다. 특별히 그는 그동안의 포로생활을 참작해 1개월 후에 석방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한달이 지나도 석방되지 않자 그의 기대는 원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찬 나날들이 계속되면서 그는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고, 먹는 것을 소화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다른 수용자에 비해 다소 건강한 편이었던 그는 며칠 후 다른 뚜렷한 신체적인 이상도 없이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미래에 대한‘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1967년에 실행된 심리학자 셀리히만의 실험입니다. 셀리히만은 24마리의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 상자에 넣고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실험은 대략 이렇습니다. 제1 집단은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충격을 멈출 수 있는 훈련을 시켰으며(도피 집단), 제2집단은 조작기를 눌러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고 몸이 묶여 있어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는 훈련을 받았습니다(통제 불가능 집단). 제3 집단은 전기충격을 주지 않았습니다(비교 집단).  24시간 이후 이들 세 집단을 다른 상자에 옮겨 놓고 전기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의 상황과 달리 상자의 담을 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실험 결과 도피 훈련을 했던 제1 집단과 전기충격 경험이 없었던 제3 집단은 담을 넘어 전기충격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통제 불가능 집단에서 훈련을 받은 제2 집단은 전기충격이 주어지자 피하려 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낑낑대며 전기충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왜 통제 불가능 집단에서 훈련 받은 개들은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달아나지 않았을까요? 이미 훈련 과정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에 도망이라는 시도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결국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력감을 학습하고 통제력을 상실함으로 절망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부정적인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어떤 시도나 노력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여기고 상황에 순종하면서 무력해 지는 현상을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합니다. 이 학습된 무기력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에게 스며들어 우리를 장악하고는 우리를 체념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마음의 병 중의 하나입니다. 3년째 계속되고, 좀처럼 끝날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팬데믹은 우리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좌절과 낙심에 빠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기인한 세계경제의 유례없는 인플레이션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사회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 합니다. 그래서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형적인 학습된 무기력의 현상이죠.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삶에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없고 다만 절망적인 마음만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 보면, 현재 우리가 겪었던 좌절감 만큼이나 크나큰 일들을 많았습니다. 6.25 전쟁이후 폐허가 된 땅에서 고군분투하며 집안을 일으키기도 하고, 어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와 언어, 문화, 환경의 장벽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걸어왔던 여정.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들도 지나가지 않았습니까? 누구에게나 처음 겪는 어려움은 산처럼 큰 문제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에 저항하지 않고 넘어진다면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학습된 무기력과 같은 계속되는 실패의 늪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가 좌절에서 버티며 학습된 무기력에 저항하여 승리할 수 있다면 좌절은 오히려 자기 인생에 소중한 자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좌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하여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빠져 들겠지만, 그 절망 속에서도 긍정적인 감정 즉 기쁨이나 만족감, 자부심 혹은 열정 같은 감정을 가지고 수시로 저항하며 도전을 시도한다면 절망적 상황이 주는 절망적이고 체념적인 마음 상태를 부술 수도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다 할지라도 우리의 희망까지도 부술 수는 없습니다. 2022년도 이제 5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연초의 다짐이 계속되는 어려움으로 인해 무너지셨습니까? 다시 일어서십시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 소망을 입고 좌절과 절망을 넘어 남은 한 해를 기쁨으로 채우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시20:5)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