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편지 / 한용구 목사

◆다윗의 위대한 용기, 셋!

우리교회가 반복해서 드리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라인 홀더 니버”의 기도문입니다. “주여, 내가 고쳐야할 일이라면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주여, 내가 고칠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 들일 줄 아는 냉정함을 주십시오. 그러나 주여, 고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고칠 수 없는 없는 것은 무엇인지 구분할 줄 아는 분별력을 주십시오.”
그렇지요. 내가 나를 고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지요. 잘못하면 고쳐야지 고쳐야지 하다가 용기를 내지 못하면 평생 후회하지요. 고칠 걸, 고칠 걸,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용기를 못내면 나중에 가슴을 치게 되지요. 그러나 어떤 경우는 고칠 수 없는 게 있어요. 그건 받아 들이는 용기가 필요하지요. 내 소관이 아니까요, 그걸 고치려다가는 헛수고만 하지요. 그러니 중요한 기도는 고칠 수 있는 것인지? 고칠 수 없는 것인지 분별하게 해 달라는 기도일 것입니다. 성경이 설명하는 믿음도 용기를 내야 열매를 맺어요. 자,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고향 아비 집을 떠나라.”
아브라함은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갈 바를 모르면서 떠나지요. 이건‘떠나는 용기’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 중에서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짐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늘 하던대로 하루 3번씩 기도했지요. 결국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위대한 용기에 감동하셔서 사자들의 입을 틀어 막아 버리셨지요.
에스더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이 나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가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는데, 삼촌 모르드개의 강권함에 따라 죽으면 죽으리이다하고 왕 앞에 나가지요. 그래서 자기 민족을 구원했지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믿음에서도 위대한 용기, 셋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울왕이 엔게디 광야에 다윗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군사 3천 명을 이끌고 달려갑니다. 골리앗을 쓰러 뜨리고 사울왕과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건진 다윗을 왜 이토록 집요하게 잡으려 하는데, 도무지 이해 되지 않지요. 그런데 묘하게도 다윗과 그 신하들이 숨어 있는 굴로뒤를 보려고 들어오지요. 그리고 피곤해서 잠들었던 것 같습니다. 굴 안쪽에서야 밖이 잘 보이지만 굴 바깥 쪽에서는 굴 안이 잘 보이지 않지요. 다윗의 신하들이 이때다 하고 한 마디합니다.
“장군이여, 이건 하나님의 뜻입니다. 명령만 하시면  사울왕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어쩌면 다윗도 잠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만 그는 하나님이 기름 부르신 자를 내가 헤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지요. 이건 다윗의 위대한 용기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위대한 용기, 첫째는 자기 감정을 말씀으로 조절할 줄 아는 용기였습니다. 감정이 욱하고 올라왔지만 아니다, 이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다윗의 그 용기가 정말 부럽습니다. 어떤 끔찍한 사건을 보면 자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기분대로 말하면 안되지요. 기분대로 행동하면 안되지요. 말씀대로 해야지요. 사울왕을 없앨 절호의 기회가 왔지만 이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거절하고 사울왕을 살리는 다윗의 믿음은 정말 위대한 용기였지요. 그래서 성경은 다윗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두번째, 다윗의 위대한 용기는 ‘말씀 때문에 손해 볼 줄 아는 용기’였습니다. 사울왕을 살려 두면 또 도망 다녀야 해요. 언제까지인지 모르지만 이걸 각오한 겁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주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고 손해 볼 각오를 하는 자들이 거룩한 성도들이지요. 주님의 십자가가 이를 설명해 주는 것이구요.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기 위해서 모욕과 조롱과 멸시를 다 참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모습이 바로 위대한 용기, 십자가의 용기이지요.
세번째, 다윗의 위대한 용기는 이제부터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용기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모든 삶을 주님께 의지하고 살아가는 용기입니다. 사울은 왕이 막강한 군사를 거느리고 있어요.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나 다윗은 모든 운명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다윗은 시편 37편에서 이렇게 확실하게 간증합니다. 이건 다윗의 체험이지요.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다윗의 위대한 용기는 셋입니다.
“내 감정을 말씀으로 과감하게 조절하라. 말씀 때문에 손해 볼 각오를 하라. 모든 걸 주님께 맡기라.”
그리하면 주님이 이루시고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는 사과!

태너 1991년도에 일본 아오모리현 지방에 엄청난 태풍이 불었다고 합니다.  그 지방은 사과 단지인데, 이제 곧 사과를 따면 되는 열매들이 태풍 때문에 90%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농부는 통곡하고 어떤 농부는 절망하고, 아우성이었다고 합니다. 일 년 농사가 날아갔으니까요.  그런데 그 와중에 농부 한 분의 머리 속에 불이 번쩍했습니다.  땅에 떨어진 사과를 보고 절망하다가 고개를 들어서 아직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몇 개의 사과를 봤습니다.  그리고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감격했습니다.
‘아니? 아직도 매달려 있는 사과가 있잖아!’
떨어진 것만 보면 절망인데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까 감탄이 터졌습니다.
‘으와! 그렇다! 이거야, 이거다!’
그리고 광고를 냈습니다.
“태풍을 이긴 사과.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는 합격 사과를 팝니다.”
대학 시험을 앞두고 있었는데 평소 가격의 10배 가격으로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아직도 남은 것이 있다,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 있다!  떨어진 것만 보고 좌절할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남은 것을 주목하는 것이 축복이지요. 어떤 경우에도, 태풍에 다 떨어진 것 같아도 매달려 있는 게 있어요. 그때부터 사과를 재배하는 농부들에게는 이런 원칙이 생겼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떨어진 것보다 매달려 있는 사과를 먼저 보자. 10%는 남아 있으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상하게 떨어진 것, 놓친 것, 사라져 버린 것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지요. 과거의 상처를 붙잡고 아직도 아파하는 경우도 있구요. 그런데 그 사건 이후로 농부들은 아직도 매달려 있는 사과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 사과를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원칙은“태풍이 불어와도 걱정하지 말자.”“태풍을 두려워하지 말자.” 왜요? 태풍을 이긴 사과가 있을 테니까요. 아무리 태풍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사과는 있으니까요. 그래서 많은 농부들이 ‘태풍이 불어도 낙심하지 말자’라는 정답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우리나라에서도 태풍을 이긴 사과, 어떤 경우에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합격 사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남은 것이 있으니 그걸 선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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