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교회 허성영 담임목사

   지난 2년 동안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Covid-19 팬데믹은 어느덧 우리에게 친숙한 듯 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식당과 마켓에서는 사람들이 즐비하고, 펍이나 클럽에는 흥미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고 또한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죠. 그러는 가운데 지난 5월 12일 미국에 모든 정부기관이 조기를 게양했습니다. 바로 미국의 코로나 누적사망자가 100만명이 넘었기 때문에 이를 애도하는 뜻입니다. 이 숫자는 단일국가로 전 세계에서 1위입니다. 물론 백신을 거부하는 운동과 같이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여야 한다 해도, 이는 참으로 비극적인 이정표입니다. 이처럼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죽음과 상관없는 인생을 삽니다. 2년 전 온 세계가 공포에 휩싸이던 때와는 다릅니다. 이제는 ‘저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 라는 생각이, 아니 ‘이러한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한국의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고, 소설가, 시인, 수필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 다니며 한국 최고의 지성인이라 일컬어지던 이어령씨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분의 책을 참 좋아했는데, 특별히 무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면서부터 저술하신 책들이 감명 깊었습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지성에서 영성으로,’‘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등 영성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셨습니다. 이어령씨의 책을 읽다 보면, 한가지 주제를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죽음입니다. 그리고 이는 이어령씨의 마지막 유작의 제목으로도 사용됩니다. 그것은 ‘메멘토 모리’입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라는 뜻입니다. ‘메멘토 모리’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현재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함께 인생에 관한 3대 라틴어 경구로 뽑힙니다. ‘메멘토 모리’에는 이런 유래가 있어요. 영화‘쿼바디스’ 를 보시면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이 연출 되는데요, 네로 황제 시대 로마의 젊은 장군 마커스 비니 키우스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개선 퍼레이드를 펼칩니다. 보통 장군들은 자주색과 황금색의 의전용 의상을 입고 승승장구하며 들어옵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그 장군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죠. 그 때 장군의 마차에 함께 올라타 있는 한 노예는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높이 들고 장군 뒤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장군의 귀에 귓속말로 무엇인가 계속해서 읊조립니다.  그것은 바로 ‘메멘토 모리’입니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기억하라! 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아니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 기쁨의 잔치에 찬물을 끼얹는 것도 아니고, ‘죽음을 기억하라!’ 라니요. 무슨 말입니까?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도 신이 아니라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승리에 도취하여, 이 승리가 영원할 것 같다 하여 교만하지 말라는 의미이죠. 제가 절대 틀릴 수 없는 예언하나 할까요? 우리 모두는 다 죽습니다. 그 시기가 다를 뿐이지요. 모두가 다 죽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죽음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90세 넘게 살다가 100세가 되어서 죽을꺼야’ 라는 마음이 있는지, 죽음이라는 단어는 생각도 하지 않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도 큰 착각입니다. 


    최근에 제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님이 말기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불과 한 달 전에만 해도 반갑게 웃으며 포옹하고 안부를 묻고 하였는데,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과 함께 연이어 부고소식을 들으니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지요. 성경에서 모든 사람은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3장 19절) 인간은 피조물이고, 유한하며,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직면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짧은 한평생을 가장 귀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이것을 깊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너도 죽을 자라는 것을 기억해라”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게 될 때에 우리는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을 가장 귀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숨쉬고 있는 순간이 너무나도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불편한 관계의 사람에게도 손 내밀 수 있으며, 이해하는 마음과 심지어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이 끝이라면 허무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이 세상사람 모두가 다 죽지만, 예수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이들은 죽음 이후에 저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할 것입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고린도후서 4장 14절) 우린 모두가 죽지만,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이 있기에 죽음을 삶의 일부로 여기며, 오늘을 감사로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예수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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