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유네스코는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하시마, 이른바‘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이에 한국이 반인도범죄가 자행된 강제징용 시설 7곳은 등재 불가라고 반대하며 국제 여론전을 펼치자, 일본은 등재 자체가 무산될까봐 한국인 강제동원과 노역사실을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등재는 하되, 역사적 사실은 명확히 알리자는 유네스코의 취지를 따른  것으로,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들을 강제징용했다고 인정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러나 등재에 성공한 이후 일본은 말을 바꿨다. 2017년 유네스코에 낸 첫 보고서에서부터‘강제 노역’이라는 표현이 빠지더니, 2019년 2차 보고서에서는 관련 내용이 아예 생략됐다. 강제 노역의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겠다는 당초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2020년 도쿄에 개관한 산업유산 정보센터에는 강제 노역을 부정·왜곡하는 내용을 전시했다. 거꾸로 군함도를 미화하는 내용만 모아놨다. 


    이에 한국은 유네스코에 여러 차례 강력 항의했고,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등재 당시 권고한 후속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데 강한 유감을 표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결정문에는 일본의 후속 조치 미이행에 대해 “강한 유감(strongly regret)을 표한다”는 강도 높은 표현이 담겼다. 통상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 유네스코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결정을 이행하지 않아도 한번 등재가 되면, 등재 취소 가능성은 낮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佐渡)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일본 문화청 문화심의회는 지난해 말 세계유산 등재 추천 후보로 사도광산을 선정했다. 일본은 2월1일까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에 최종 신청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만약 일본이 신청서를 제출하게 되면 유네스코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에서 심사를 거쳐 2023년 세계유산 등재여부가 결정된다. 이는‘제2의 군함도’사태가 재연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니가타현 사도섬에 위치한 사도광산은 17세기, 에도 시대의 세계 최대 금 산출지다. 그러다가 1896년 민간 기업인 미쓰비시에 매각됐고, 이후 태평양전쟁 당시 구리, 철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활용됐다. 당시 조선인 최소 1140명이 강제 동원돼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문제는 니가타현 지방정부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유산 신청 기간을‘센고쿠 시대(1467~1590) 말부터 에도시대(1603~1867)’로 한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누가 보아도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의 어두운 역사를 감추려는‘꼼수’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사도광산의 현장이 쌓아온 수백년 역사에서 일부 시기만 자른다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원칙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인‘완전한 역사(full history) 반영’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이는 사람으로 치면‘어릴 때는 착했다’라는 식으로, 특정 시기만 놓고 한 사람의 인생을 치하하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본 스스로 자신의 발등을 찍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지난 주말 일본 언론들은 한국의 반발 등으로 사도광산이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될 전망이 희박하다고 판단해, 2024년 이후 등재를 목표로 할 방침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최종 입장은 이번 주에 결정된다. 자신만만하게 사도광산의 등재를 추진하던 일본이 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을까. 이번 일은 일본이 자기 꾀에 빠진 형국이다. 일본의 요구로 인해 지난해에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 회원국이 반대하면 심사를 중단한 뒤 기한을 정하지 않고 당사국 사이에 대화를 계속하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됐다. 일본은 2015년 10월‘난징대학살’관련 기록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2016년 한국 등이 일본군‘위안부’기록물에 대해 등재 신청을 하자, 일본은 분담금을 내지 않는 등 전방위적 압박을 통해 유네스코가 이 제도를 도입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요미우리신문은 “이번엔 일본이 반대 입장이 됐다. 한국이 반발하는 가운데 사도광산을 추천하면 국제사회의 신용을 잃을 수 있다”는 외무성 내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또, 일본이 사도광산 추천에 다소 미적거리고 있는 것은 2015년 군함도가 포함된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조선인 강제동원 등 유산과 관련한 ‘모든 역사’를 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유네스코의 경고를 받은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12월1일까지 이행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사도광산의 등재를 신청할 경우 유네스코에서 군함도와 함께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된다. 사도광산에서 1939년 2월부터 약 1200여명의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이미 구체적 자료로 입증돼 있다.


    ‘네거티브 유산’이라고 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를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우크라이나인 등을 강제동원했던 람멜스베르크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시설 내 박물관의 20%를 할애해 과거 강제노동 역사를 비중있게 전시하고 있다. 람멜스베르크 광산 박물관 측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강제노동 생존자들을 일일이 찾아 인터뷰했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담아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의 유산 가치를 무조건 부정하는 게 아니다. 자랑할 만한 역사만 내세우고 부끄러운 내용은 감추고 왜곡하는 일본의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일본이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한 약속도 이행하지 않으면서 다시 강제노역 사실을 숨긴 채 등재를 시도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지만, 뒤통수를 또 맞지 않으려면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군함도의 교훈은 강제 노역이라는 정확한 기록을 갖고 일본 정부에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국제사회에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이는 한·일 간 정치적 싸움이 아니라 완전한 역사를 공유하기 위한 세계 시민의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일본은 군함도와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면 역사 왜곡부터 멈춰야 한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