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00만명에 달해 '오토바이 대군(大軍)'으로 불렸던 중국 남방지역 농민공들의 오토바이 귀성 행렬이 자취를 감췄다. 중국 매체 펑파이신문은 25일 춘제(春節·중국의 설·올해 2월 1일)가 다가오면서 귀성이 본격화됐지만 선전과 광저우(廣州) 등 남방지역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농민공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농민공들은 대신 안전하고 빠른 자가용이나 고속열차를 타고 귀성길에 오르고 있다. 개혁·개방의 전초기지였던 주장(珠江) 삼각주 연해 지역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던 1980년대 쓰촨(四川), 광시(廣西), 충칭(重慶) 등 내륙지방에서 몰려든 1천만명의 농민공들은 춘제 때 고향에 가기가 쉽지 않았다. 춘제 때가 되면 내부 거래로 빼돌려져 암표 시장에서 수십 배까지 치솟는 고향행 열차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저임금의 막노동에 종사하던 농민공들 가운데 고향에 가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점차 경제적 형편이 나아진 농민공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오토바이를 빌리거나 장만해 고향에 가는 방법을 택했다. 광저우와 선전에서 비교적 가까운 광시는 물론 후난(湖南),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충칭까지 수백㎞를 타고 귀성길에 오르는 오토바이 부대들이 등장했다. 푸젠(福建)성 취안저우(泉州)에서 1천여명이 탄 오토바이 800여 대가 한꺼번에 고향으로 가는 레이스를 펼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도변에는 오토바이 부대를 위해 지방 정부들이 임시 휴게소와 주유소를 설치하고 이들에게 무료로 음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2014년 광둥(廣東)성 통계에 따르면 그해 춘제 때 오토바이로 고향에 간 농민공이 100만명을 넘었다.
해마다 장관을 연출하며 중국 남방지역의 춘제를 상징했던 오토바이 귀성 부대로 인한 사회적 손실도 적지 않았다. 하루 최고 1만대의 오토바이가 몰리면서 목숨을 잃는 교통사고가 빈발했다. 심한 경우 오토바이로 인한 사고가 하루 50여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춘제 기간 지방 정부의 가장 큰 숙제는 오토바이 귀성 부대를 안전하게 통제하는 것이었다. 2014년 말 광둥과 광시, 구이저우를 잇는 고속철도가 개통하고, 열차표 실명 구매제가 도입돼 암표가 사라진데다 농민공들의 급여가 현실화하면서 오토바이 귀성 행렬은 급속히 감소했다. 오토바이 부대의 출발 거점이었던 광둥성 포산(佛山)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지난 18일 10대를 밑도는 귀성 오토바이만 목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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