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변을 못 가린다고 50대 아들이 어머니를 죽였다. 몇 일전 서울에서는 허리 수술을 받고 거동이 불편해 기저귀를 하고 있던 어머니가 대변을 본 것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때려서 죽였다.  아들은 어머니가 의식을 잃자 구급대를 불러 병원으로 옮겼지만 뇌출혈 진단을 받자 수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다시 집으로 데려갔고, 다음날 어머니는 바로 사망했다. 또 다른 동네에서는, 아들이 용돈을 안 준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서른 일곱 살이나 먹고도 아버지에게 계속 용돈을 타 쓴 아들은, 사건 당일에도 용돈을 달라고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다가 홧김에 부엌에 있던 흉기로 아버지를 무려 10여 차례나 찔러 숨지게 했다. 또 다른 집에서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평소에도 말다툼이 잦았던 고부간이었다. 시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시집에서 생일상을 준비하던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심하게 말다툼을 벌이다가 홧김에 부엌에 있는 흉기로 시어머니를 여러 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이 끔찍한 사건들이 지난 한 주 동안 모두 일어났다. 어버이날이 낀 한 주였기에 이런 뉴스가 더욱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존속살인과 패륜은 강도 살인죄의 뉴스를 접할 때와 느낌이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런데 ‘이런 불효 막심한 자식들을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 또한 부모의 탓이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바뀐다.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또한 부모 스스로의 탓이라는 생각 말이다.

 예로부터‘부모가 되기 전에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자식들이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부모들의 푸념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도 어느새 부모가 되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하지만 결론은 그 옛날 어른들이 했던 말과는 조금 다르다. 부모가 자식에게‘너희는 지금 나를 이해 못하니 그냥 복종해라’고 명하기 전, 부모 스스로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반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존속살인과 패륜이 판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 절반이상이다. 부모로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고 자식을 억지춘향처럼 키운 결과일수도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공경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필자도 부모가 되지 않았으면 부모에 대한 의무를 이렇게 쉽게 언급하지 못했을 것 같다. 때로는 겁이 난다. 나도 옛말을 하던 그 어른들과 같아질까 봐 두렵다. 그래도 ‘무조건’ 어른 말에 복종하고, 공경해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발상은 싫다. 함께 서로를 이해하면서 존경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분명 옳다. 필자 또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루에도 수도 없이 화를 낸다. 하지만 이런 나를 반성하는 것도 잊지 않는데, 이렇게 반성하는 것을 아이들이 가르쳐주었다. 엄마가 화를 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엄마이지만 사과를 할 일이 있으면 주저 없이 사과도 한다. 아이들은 혼이 난 뒤에도 엄마와 함께 당시의 오해를 조근조근 풀어보는 것도 재미있어한다. 그래도 그들을 모두 이해하려면 갈 길이 멀다.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 것 또한 부모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책임이 항상 짐으로 남아있다.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이순신 장군도 아니고 세종대왕도 아니다. 바로 아버지이다. 38년 동안 국방부 소속으로 근무하면서 대한민국 훈장을 받고 퇴임을 하셨다. 하지만 필자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 훈장 때문이 아니다. 그는 다정다감한 말이라곤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결정판이다. 우리 4형제 중 한 명이 잘못을 저질러도 단체로 엎드려 뻗쳐를 해야 했고, 매일 오전 7시이면 출근하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우리 4형제는 곤한 눈을 비비고 현관문에 일렬로 섰다. 이런 엄격한 분위기는 사춘기 시절에 자칫 반항아를 낳을 수 있다는 반성을 하게 했고, 반면에 아버지의 빈틈없는 군생활 속에서 우리는 정직함과 명예, 올곧은 성품을 배웠다.

 어제 한국에 있는 언니한테서 이메일이 왔다. 엄마가 배추 김치며 깍두기, 깻잎무침, 시금치, 무나물, 미역, 우리 산에서 딴 산나물무침 등을 해가지고 왔단다. 전날 자정까지 열심히 씻고 다듬고 무쳐서 가지고 왔다면서 이메일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엄마는 평생 박봉의 공무원 아내였지만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같다면서, 자기 딸한테도 그렇게 해 줄 수 있을까 염려했다. 내 기억 속의 엄마도 항상 그랬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계속 서울에서 유학하는 필자에게 두 달에 한 번씩은 소포 박스를 보냈다. 그 박스에는 양말, 속옷 그리고 사과와 배까지 알차게 들어있었다. 서울에서도 사먹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사러 가는 수고를 덜어주고 싶었단다. 돈과 바꿀 수 없는‘정성’을 배웠다.

 자식들이 존경할 수 있는 그 어떤 한 가지만 있다면 돈을 못 버는 부모라도, 못 생긴 부모라도, 학력이 높지 않은 부모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공경은 그냥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받고 싶으면 노력해야 한다. 필자 또한 우리 아이들이 존경할 수 있는‘그 한 가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늦지 않았다. 오늘부터라도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이 공경할 만한 그 무엇을 만들어 보길 바란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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