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지난 2년간 그 혹독했던 코로나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어느 때보다 벅찬 감동으로 새해를 맞는다. 그러나 새해 첫날부터 콜로라도는 우울했다. 지난주 볼더 카운티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콜로라도가 재난 지역으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화재는 콜로라도주 역사상 가장 피해가 큰 화재로 기록될 것 같다. 콜로라도에서 12월에 대규모 화재는 이례적인 일이다. 몇 달째 계속된 가뭄으로 건조한 가운데 강풍에 올라탄 불길이 쉽게 번진 것이다. 시속 100마일이 넘는 바람이 불면서 불은 순식간에 동네를 덮쳐 1천채에 이르는 주택과 가게들이 삽시간에 전소되었다. 이 중 한인들의 피해도 제법된다. 한인 피해자에 따르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불길이 번졌는지, 처음 불길을 목격한 후 채 10 분도 지나지 않아 불길이 금세 집을 덮치는 바람에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한다. 산불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는 덴버에서 총격사건으로 인해 4명이 사망해 떠들썩했고, 한 해를 마감하는  31일에는 콜로라도내 코로나 확진자가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어 이번 산불까지 겹치면서 새해 첫날부터 콜로라도에 악재가 겹쳐 설상가상의 형국이 되었다는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는 기적과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큰 산불임에도 불구하고 인명피해가 크지 않다는 것은 기적이다. 


    지난달 중순 미 프로골프(PGA) 챔피언스 이벤트 대회인 2021 PNC 챔피언십 경기가 열렸다. 유명 골프선수들이 가족 한명과 팀을 이뤄 진행되는 대회인데, 타이거 우즈와 그의 아들 찰리가 나와 마스터스 대회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다. 한 해의 신년사를 적는 중에 생뚱맞게 우즈의 얘기를 하고 싶은 이유는 그의 극적인 인생에서 배울 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극적인 삶을 산 사람이 있을까. 두살 때 골프 천재로 방송에 출연한 후 오늘까지 40여년동안 줄곧 세상을 놀라게했다. 미 프로골프 투어 통산 82승과 무려 12타 차로 1997 마스터스 우승을 포함해 메이저대회 15승, 그리고 683주 세계랭킹 1위 등 누구도 넘보기 힘든 업적을 숱하게 이뤘다. 


    그러나 이런 대기록과 함께 수많은 역경도 따랐다. 2008 US오픈에서는 무릎부상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연장 혈투를 벌였고, 소화전을 들이받고 혼절한 교통사고를 계기로 불륜 스캔들도 터졌다. 그 이후로 슬럼프에 빠졌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그의 길을 걸었고 2019년, 11년 만에 또한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큰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그의 골프인생은 또다시 벼랑 끝에 섰다. 절벽으로 떨어져 처참하게 뭉개진 차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수술과 재활은 쉽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골프인생은 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다리 수술 아홉달만에 3초짜리 아이언 샷 영상을 공개했고 전세계는 열광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아들과 함께 이벤트 대회에 출전해 2위를 하며, 전세계 골프팬들을 다시 한번 텔레비전 앞으로 모이게 했다.  사실 우즈는 이 끔찍한 사고 전에도 허리와 다리 수술을 열번 정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돌아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프 선수라고는 하지만, 그 또한 인간이다. 과연 그가 고통을 감당해 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사고 이후‘끝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가장 힘들었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이 고통스러운 재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골프를 다시 칠 수 있을지, 걸을 수는 있을지.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하루도 재활 훈련을 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한꺼번에 1년을 생각하지 않고, 두세 시간 정도를 한번이라고 생각하면서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그 시간들이 축적되어 몇 주, 몇 달이 되었다. 즉, 고통의 시간을 잘게 쪼개는 것이 그가 매번 재기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였다.


    말로는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전세계는 언제 코로나 블루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간절함으로 버티고 있다. 올해는 과연 코로나가 끝날 수 있을까. 한국에 있는 친지들을 방문할 수는 있을까. 마스크를 온전히 벗을 수 있을까. 매일매일 긴장하고 거리를 두면서 산 지 2년이 지났다. 2차 접종 후 부스터샷을 맞으면 일상의 회복을 기대했지만 오미크론과 계속된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은 우리의 일상을 또다시 주저앉히고 있다. 여행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심지어 가족계획도 미루는 이들이 많아졌다. 과연 끝이 오기는 하는 것일까. 


     대학 신입생들은 인생에 한번 뿐인 신입생 시절을 코로나 때문에 날려버렸다. 동기·선배들과 인사 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신입생 뿐만 아니라 대학생 대다수가 코로나로 대학 생활이 엉망이 되었다. 한창 또래 아이들과 뛰어놀아야 할 초중등생들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지 못했다. 아이들과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끝 모를 팬데믹, 일상 회복에 대한 희망과 좌절의 반복에 모두가 심신이 지쳤다. 이처럼 끝이 보이질 않는 막막한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즈의 고통 시간 나누기 방법은 도움이 될 만하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짧은 단위로 시간을 쪼개 모든 걸 쏟고, 최선을 다하기를 반복해나가는 것이다. 정글북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러디어드 키플링 또한 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견디기 힘든 1분의 시간을 최선을 다해 뛰는 60초로 채울 수 있다면 이 세상과 그에 속한 모든 것이 네 것이 되리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확산 중인 오미크론 변이는 심각도가 낮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이 일종의 독감과 같은 계절성 감염병으로 누그러질 것이라는 낙관론도 적지 않다. 그리고 먹는 코로나 치료제가 대중화될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콜로라도 화재의 피해도 주 정부와 보험사의 도움으로 빠르게 처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 끝날지 모를 불안과 초조의 시간을 각자의 방법으로 쪼개어 견디다 보면, 올 한해도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임인년은 육십간지 중 39번째 해로 '검은 호랑이의 해’이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호랑이를 두려움과 동시에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며 귀신과 역병을 몰아낸다고 믿기도 했다. 2022년 새해에는 호랑이의 힘으로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모두가 일상을 회복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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