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주말에 잠시나마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이 낙이다.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해 모든 신경세포를 한데 모아 알아듣지 못하는 미국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진다. 요즘 한창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는 ‘갯마을 차차차’이다. 보통 일반적인 드라마에는 극적인 요소를 위해서 항상 악인이 등장하는데, 아직까지 이 드라마에서는 그렇다 할 악인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아름답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 풍경은 스트레스를 날려 주기도 하고, 자주 등장하는 동네 사람들의 수다는 우리의 일상을 재현하는 것 같아서 야릇한 동질감이 느껴지고 보는 내내 편안하다.  필자가 특별한 반전이나 긴장감도 없고, 못된 악인들도 등장하지 않는 이런 밋밋한 드라마를 선택한 것은 가슴 졸이지 않고, 힐링하며 시청할 수 있어서다. 이곳 사람들은 함께 어울려 산다. 이들의 삶에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일구어 가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이웃의 속사정을 훤히 알고 있고,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서로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별다른 주변의 방해없이 알콩달콩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한번은 주인공의 할아버지 제삿날이 그려졌다. 주인공이 몸이 아파 미처 제사 음식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네 사람들이 제사상에 올라갈 음식들을 하나씩 하나씩 준비해 주인공의 집을 찾는 장면을 보면서, 이들은 함께 살고, 살기 위해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2주전인가 이렇게 잔잔하면서도 순진한 드라마를 기분좋게 보고 거실로 나오자마자, 깜짝 놀랄 장면이 거실 TV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차없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들이 연속으로 나왔다. 긴장감이 돌면서 갑자기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라는 놀이를 하다가 자칫 손가락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관찰자들에 의해 총살을 당하는 장면이었다. 이 게임은 이렇게 살벌한 놀이가 아니라, 어릴적 동네 친구들과 심심풀이로 했던 단순 놀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게임이 끝나고 난 뒤에 놀이 참가자의 절반이 죽었다. 직전까지 봤던 갯마을과는 정반대로,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주변의 사람들이 죽어야 한다는 이 살벌한 드라마, 남편은 재밌다며 이틀만에 통방한 이 드라마가 바로 ‘오징어 게임’이다. 그리고 지금 이 드라마는 전세계 83개국에서 시청률 1위에 등극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오징어 게임'이 넷플렉스 사상 최고 히트작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SNS 에서는 오징어 게임에 나온 아이들 놀이를 따라하는 사람들의 동영상이 급속히 퍼졌고,  소매업체들은 '오징어게임' 의상을 할로윈에 맞춰 앞다퉈 판매하고 있다. 국내외 오락프로그램에는 오징어 게임 패러디가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미국 유명 토크쇼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드라마의 인기는 고공행진 중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오픈한 오징어 게임 체험관에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아이들 역시 학교에서 학교 친구들과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놀이에 대한 질문을 받으며  한국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오징어 게임은 방탄소년단, 기생충에 이어 전세계에 한국 문화 컨텐츠의 신화를 잇는 또하나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게임 참가자들은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하루 아침에 잘렸고, 야심차게 치킨집을 차렸지만 망했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악착같이 모은 돈을 들고 경마에 탕진했다. 대책없이 허황된 꿈만 꾸지만 현실은 그저 동네 백수다. 이 놈의 인생, 대체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답이 없는 암담한 사람들, 지옥보다 더 지옥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이들은 살아남으면 거액의 상금을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받는다. 이들이 모여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거액의 상금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야말로 극한에 처한 인간의 본성과 내면을 처절하게 그린 작품이다. 


    오징어 게임의 세상은 단순하지만 매우 잔혹하다. 총 6개의 게임을 통과해 끝까지 살아남은 우승자에게는 무려 456억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여기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것을 뜻한다. 참가자는 456명. 내 옆의 동료 한 명이 죽을 때마다 누적 상금액은 1억원씩 늘어난다. 잔인한 게임이지만 게임 방법은 단순하고 친근하기까지 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달고나,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그리고 마지막 오징어 게임까지 우리가 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이터나 공터에서 즐겼던 6개의 게임이 등장한다. 게임의 구성이 옛 추억을 생각하게 하는 게임이어서 잠시나마 추억을 떠올리며 웃어야 하지만, 결코 웃을 수 없다. 이 순진무구한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사람들이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을까 의아해하며 TV 리모콘을 정지시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잔혹함의 끝도 궁금해졌다. ‘오징어 게임’은 인생이 과연 각자도생해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기훈과 상우의 대비는 그래서 중요하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사이지만 기훈과 상우의 인생은 180도 다르다. 공고를 졸업해 공장에 취업했지만 그마저도 잘리고 도박 인생을 사는 기훈. 서울대를 졸업하고 증권사에 다니며 성공 가도를 달리지만 고객의 돈을 불법으로 투자했다가 빚더미에 앉은 상우. 얼핏 기훈은 실패한 인생, 상우는 성공한 인생 같아 보이지만 삶의 태도는 정반대다. 기훈은 가방끈은 짧지만, 무엇이 염치있는 삶인지 그렇지 않은 삶인지를 안다. 상우는 그런 기훈을 보며 약지 못해 실패한 인생이라 말한다. 이러한 두 사람의 극명한 태도는 서바이벌 게임 안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이를 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기훈인지, 상우인지를. 


    무한 경쟁과 혐오가 극심해지고 바이러스로 고립된 삶을 사는 지금, ‘오징어 게임’이 던진 메시지는 우리 스스로가 한 번쯤은 깊이 되돌아봐야 할 질문이다. 게임 속에 담긴 메시지인 경쟁, 적자생존, 물질 만능주의, 한탕주의가 세계 공통의 정서이다 보니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 비릿하고 잔혹했던 드라마가 숨을 쉬게 만드는 구멍은 사람 냄새나는 기훈이라는 캐릭터가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비록 갯마을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들이 전개되었지만, 결국 사람은 따뜻한 인간 냄새에 끌리기 마련이다. 전세계가 기다리는 시즌 2에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도 모두가 승자가 되는 묘수를 찾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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