휄로쉽교회 이두화 담임목사

    뜨거운 여름을 뒤로한 채 시원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게 해주는 9월이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가뭄이 심하게 있었던지라 9월이 아주 반갑기만 하다. 하지만 이렇게 반가운 시간과 계절의 변화가 아이들의 시간에서는 상관없는 것 같다. 한 아버지가 4살짜리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9월이 되어 시원한 가을 날씨가 너무 좋지?” 이윽고 이 말을 들은 아들이 대답했다. “난 9월이 싫어요. 그리고 10월도 싫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다시 아들에게 묻기를. “왜 9월도 싫고 10월도 싫어?” 그러자 아들이 하는 말, “11월에 제 생일이 있거든요…” 4살짜리가 목적도 분명하고 싫고 좋음에 대한 의사 표현도 분명하지만, 어린아이의 동심의 세계에서는 시간의 인과 율 그리고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 11월이 되려면 9월과 10월을 지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무엇이든지 결과물이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시간이 지나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인고의 과정은 반드시 지나가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심 어린아이들은 이 모든 중간 과정을 모르니 생략하고 결과만 얻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다. 그래서 11월이면 좋겠다고 하는 거다. 하지만 이처럼 결과만 얻고 싶어 하는 마음이 비단 어린아이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어떤 물건을 사도 그 속에는 설명서, 곧 ‘매뉴얼’이라는 것이 있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물건을 사서 작동하는데 메뉴얼이 익숙하다. 그러나 요즘 젊은 (MZ) 세대들은 ‘매뉴얼’ 보다는 ‘YouTube’를 찾아보는 것을 선호한다. 내가 읽는 수고를 뒤로하고 누군가가 선행 학습한 것을 친절하게 대신 알려주고 또 눈으로 보는 시각적 편리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목적지로, 결론으로 빨리 가고 싶은 것이다.


     심지어 언어나, 스포츠 혹은 악기를 배운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빨리 말하는 법, 빨리 연주하는 법 등등 이른바 ‘속성’코스를 좋아한다. 이 때문인지 ‘속성’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데 항상 성공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이런 것들은 사람들의 심리가 인고의 과정보다는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잘 보여주는 예다. 그렇다고 어느 누가 결과를 빨리 보기를 싫어하겠는가? 누구든지 어떤 것을 처음 시도할 때 잘하고 싶고 좋은 결과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들 한결같다. 못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어느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나야 할, 지불해야 할 과정들이 존재한다.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공부하고, 음악 이론을 배우고, 몸에 익숙해지도록 수많은 연습을 해야 언어를 잘하고 악기를 잘 연주하며 스포츠를 잘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인내하며 고생하고 습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신앙도 이와 똑같다는 것을 아는가? 신앙에 속성 코스는 없다. 신앙의 지름길은 절대 없음을 보여주는 예가 바로 마태복음 25장에 나타난 열 처녀의 비유이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마 25:1)


   여기 열 명의 처녀 모두는 등을 준비했다. 모두 등을 준비했다는 것은 이들 모두가 신랑이신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밝히고, 준비하고 맞이하여 신앙의 최종 목적지인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등을 밝히는데 사용된 것은 기름이다. 기름은 ‘성령’을 이야기한다. 곧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준비하는 것인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 가운데서 나온다. 그런데 하루 만에 많은 기름을 준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리. 만약 이것이 가능했다면 우리 모두 오늘 잔뜩 준비해 놓고 다시는 준비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기름을 준비해야 함을. 왜냐하면 우리는 준비해 놓을 것을 오늘 나의 등을 밝히기 위해 소비해야 한다. 그러므로 미리 준비하지 않고 서는 분명히 준비된 것을 다 쓰고 나면 나중에 가서 지속해서 불을 밝힐 기름이 없게 된다. 그래서 주님은 기름의 준비 여부를 따라서 주님은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로 구분하셨다. 슬기로운 처녀는 그리스도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인내와 수고로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을 성실하게 그리고 꾸준히 모아놨다. 반면 미련한 처녀는 미리 준비하지 않아 마지막에 기름을 사러 나갔다. 그러므로 신앙에는 지름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항상 충만하여 어떤 어려움과 시험이 다가와도 항상 시험에 이길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또 과거에 경험한 은혜가 한평생 지속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만 된다면 믿음과 은혜의 분량을 잔뜩 구해 놓고 내일이나 먼 미래의 삶에서는 구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어제의 은혜가 오늘 나를 승리로 이끌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오늘의 삶에서 필요한 새로운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과 은혜는 매일 새롭게 주시는 분이시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22-23) 결과적으로 난 믿으니까 알아서 되겠지 라는 ‘Automatic’ 자동은 없다. 우리의 신앙은 매일의 삶 속에서 준비되어야 한다. 이렇게 준비된 사람은 고생 끝에 맺은 아름다운 ‘열매’라는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모든 독자들과 덴버의 모든 성도들이 이와 같이 준비된 자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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