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재임기간 중 가장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선 사람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장관직에 오르자 마자 딸의 부정입학건이 불거지면서 지난해 7월 임명 35일만에 사퇴를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조국 전 장관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한 재판 절차는 8부 능선을 넘었다. 부인인 정경심 교수가 1심 2심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고, 동생도 2심에서 추가 형량이 주어지면서 구속됐다. 딸도 지난주에 5년 전 입학했던 부산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취소되었다. 조 전 장관은 본인의 재판과 함께 대법원 선고가 아직 남아 있지만, 그동안 주장과 달리 사실심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유죄가 점점 늘어나는 형국이다. 


    보통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은 잘못한 일이 많으면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조용히 있다. 그런데 조 전 장관은 가족들의 유죄가 드러나면 날수록 소셜 미디어를 더욱 바쁘게 움직여, 한국 전체를 시끄러운 말싸움 놀이터로 만들었다. 벌써 2년째 이다. 이번에는 모친까지 가세했다. 모친은 최근 “아드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모습에 괴로워하시던 성모님의 마음을 2년 넘게 체험하고 있다”는 편지를 어느 사제에게 보냈다. 누가 봐도 문맥상 조국을 죄 없는 예수로, 자신의 처지는 성모 마리아에 비유한 것이다. 조 전 장관은 어머니의 편지에 “목이 멘다”고 답했다. 모친은 아들이 죄 없이 고초를 당하고 있다고 믿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 성모와 예수 글을 또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러자 국민들 사이에는 신성(神聖) 가족과 우상 숭배라는 말이 등장했다. 
     '신성’은 속세와 구별되는 고결함을 뜻한다. 그래서 신성을 비판하면 비판하는 쪽이 벌을 받는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북한 말고 이런 존재가 없다. 그런데 25만명이 조씨 딸 의전원 입학 취소 반대 청원에 동의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보면 한국 사회엔 조씨 일가를 신성으로 받드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모양이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언론징벌법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듣도 보도 못한 ‘악법’이기 때문이다. 이 언론징벌법은 24일 새벽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법사위에서 일방처리 되어,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려다 여야의 극렬한 대치끝에 한달간 연기된 상태에 있다. 이 법은 집권당 추진 세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찬성하지 않는다. 집권당 하는 일 대부분에 입장을 함께해 온 정의당도 반대한다. 외신기자클럽도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법안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초유의 고립이다. 


    이 법은 곳곳에 위헌 소지가 가득하다.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언론사에 피해액의 5배까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지금도 형사처벌이 가능한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도입하는 건 이중·과잉처벌 소지가 크다. ‘고의·중과실의 추정’ 조항은 자의적이고 모호하다. 입증 책임을 언론사가 지게 했다는 논란도 있다. 오보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언론사의 ‘현실적 악의’를 입증해야 하는 이곳 미국과 천양지차다. ‘기사열람차단 청구권’도 사실상 기사를 삭제하는 쪽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손해배상 적용의 전제 조건으로 ‘언론 등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어야 한다’는 조항에서 ‘명백한’을 삭제하는 등 법안이 확대 남용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렇게 강행되고 있는 언론징벌법을 “이상직법”이라고 한다. 이상직 의원이 감옥가기 직전 자신에 대한 비리 보도를 막으려고 이 법을 밀어부쳤다.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면 이 법안은 조국과 연결되어 있다. 온갖 비리가 드러난 조씨가 장관 사퇴를 선언한 날, 문재인 대통령은 “언론은 스스로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받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왜곡 기사를 쓰면 징벌적 배상으로 완전히 패가망신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조씨 일가에 대해 함부로 보도하면 벌하겠다는 것이다. 언론징벌법은 이렇게 태동했다. 


    조 전 장관을 향한 특혜는 상상 외로 많았다. 이전 정권 수사 때는 아무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하던 피의사실 공표도 조씨 일가에 관련된 피의 사실 공표는 철저히 막았다. 조씨 아내가 검찰에 출두하기 직전엔 전직 대통령들조차 피해가지 못한 검찰청 포토라인이 폐지되었다. 또 검찰은 지금까지도 ‘입시 비리 공범’인 그의 딸을 기소하지 않고 있다. 전례로 본다면 이화여대 정유라, 숙명여고 쌍둥이, 성균관대 논문 갑질 교수 등 대부분 입시 비리, 시험 비리 사건에서 공범인 자녀도 함께 기소됐다. 또한 재판이 끝나기 전에 부모는 파면, 자녀는 퇴학당했다. 하지만 조씨 아내는 다니던 대학에서 징계 없이 면직됐고 딸은 지난주까지 고대 나온 인턴 의사였다. 그리고 불법 입학이 거론된 지 2년만에 입학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2년이면 대통령 임기의 절반에 해당되는 기간이다. 적어도 앞으로 1년 동안은 그의 재판도 진행될 것이다. 그 귀한 시간을 조국 구하기에 전념한 현 정권과 지지자들에게 조씨 일가는 정말 신성한 가족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수 밖에 없다.  


    언론징벌법은 과거의 독재 권력이 힘으로 언론을 겁박했다면 이제 돈으로 언론을 겁박하는 시대를 만들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눈과 귀를 막은 채 170여 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놀라운 독선이자 오만이다. 언론의 감시와 견제로부터 비켜 있겠다는 속내다. 겉으론 국민의 피해 구제를 내세우지만, 속내론 민주당 구제를 염두에 두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문 대통령은 야당 시절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명예훼손으로 수사·기소하는 것은 잘못된 일”, “공인에 대한 비판·감시는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최순실씨 사건 때엔 “언론의 침묵은 국민의 신음”이라고 했었다. 과거의 문 대통령이 지금의 문 대통령에게 답을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언론징벌법의 직접 수혜자일 수 있다. 내년에 누가 정권을 잡든 그간 억눌러 있던 권력형 비리가 터져나올 텐데 문 대통령도 이 법에 의탁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의 결정은 비겁하다. 이 법은 힘 있는 권력자가 감추려는 어두운 구석을 언론이 들추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훌륭한 방패막이가 될 것이다. 이는 권력의 감시와 견제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정면으로 반하는 법안이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최종 책임은 고스란히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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