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교회 김교철 담임목사

    많은 경우에 미성숙함으로 격는 어려움들이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까지 어려움과 고통을 줄 때가 종종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의사는 자기의 온 정성과 마음과 기술을 다해서 환자를 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골치 아프고 손을 떼고 싶거나 돕고 싶지 않은 환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치료하는 의사보다 더 많이 아는 척하는, 잔소리 많은 환자라고 합니다. 진찰 결과라든가, 처방이라든가, 약이라든가, 의사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습니다. 다 의심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 압니다. 이런 환자는‘차라리 당신 스스로 고치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영 대하기 싫다고 합니다. 


    두 번째 환자는 미안한 말씀입니다마는 제 딸도 교사지만, 학교 교사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어린아이를 가르쳐 만사를 따져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그러면 이렇게 된다, 또는 공식에 의해서 모든 것을 따지는 그런 체질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사가 이렇게 저렇게 치료를 하면, 이것 먹으면 낫느냐, 이렇게 하면 꼭 낫느냐, 왜 그러느냐,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합니다. 치료라는 것이 A+B는 아닙니다.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살고 죽고가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따지니까 의사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세 번째 환자는 조급한 마음을 가진 환자입니다. 예를 들어 항생제 같은 약은 투여하고 나서 적어도 사흘이 지나서야 효과가 납니다. 그런데 약을 한 봉지 먹고는 왜 안낫느냐, 아침에 치료받고는 저녁에 왜 안낫느냐, 그리고 왜 이렇게 아프냐고 한답니다. 그래서 보따리 싸가지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아는 어떤 분도 본래 위장이 좋지 않아서 가끔 발작을 했습니다. 그래, 십 년 동안이나 한 의사로부터 계속 치료를 받았습니다. 위가 나빠질 때마다 그 의사에게 가서 회복하고, 또 회복하고, 그러다가 그 방면에 더 훌륭한 의사가 있다고 듣고는 새로운 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거기서 치료를 다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모두가 후회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왜 이런 것입니까? 우리의 교육도,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영 순종할 줄을 모르고, 영 믿음이 없고, 만사를 조급하게 생각하고......이런 인간은 구제불능입니다. 의사도 이런 사람을 만나면 아주 골치 아파합니다.


    인격형성이라는 것은 하나의 변화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자연적 변화가 있고, 개인적 변화가 있습니다. 보세요. 사람이 나이가 먹고 몸이 자라면 그에 따라서 지식도 자라고, 생각도 자라고, 경험도 자라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모든 사건에 부닥치면 따로 공부를 안해도 알 만큼은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공부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통해서 압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공부를 통해 배워서 내 마음 속에서, 내 인격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는 ‘신부교육’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자들, 혹은 남녀 간에 서로 화끈하게 연애만 했지 결혼생활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이것은 공부가 아닙니다. 그런데 공부 안해도 다 아는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들어서 결혼하자마자 첫날부터 부딪히는 것입니다. 이래서 문제가 됩니다. 진작에 공부했어야지요. 남자가 무엇인지, 여자가 무엇인지, 둘이 산다는 게 무엇인지, 남남끼리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입니다. 


    그것은 수 백년 역사와 함께 변했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배웠고, 지식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배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 채로 있다가 막상 부딪히니까 멍청한 짓을 하는 것이지요. ‘이런 줄 몰랐다’고 말입니다. 왜 몰랐습니까? 그것도 몰랐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이래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지식은 내가 경험하지 않고, 내가 부딪히지 않아도 얼마든지 생각과 교육을 통해서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내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몸이 먼저 가는 것은 자연적 변화요, 정신이 먼저 가는 것이 교육입니다. 경험이 먼저 가는 것은 물리적이고 동물적인 것이요, 지혜가 먼저 가는 것이 교육입니다. 배운 바 인격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내적 성장이 있는가 하면 외적 성장이 있습니다. 또 지식의 성장이 있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안다는 것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성품의 성장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리스도의 마음-온유와 겸손과, 그리스도처럼 느끼고,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그리스도처럼 사랑하고, 그리스도처럼 기뻐하는 그런 인간성, 그런 인간, 그런 영적 존재로 성장의 목표는 언제나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입니다.


    또 성경은 예수님의 ‘균형있는 성장’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렸을 때, 그 자라는 모습을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키가 자란다’-체육, ‘지혜가 자란다’-지육, ‘하나님께 사랑스러워 가시더라’-종교,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시더라’-윤리, 이렇게 네 가지 방향으로 균형 있게 성장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녀들을 보면 더욱이 지금 팬더믹 때에 자녀들을 보면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밤새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이런 시대에 가장 중요한 삶의 방향, 목적을 알수 있는 신앙 교육이 중요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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