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20년간 지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의 패배로 끝났다. 지난 15일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장악하고 승리를 선언했다. 이로써 아프가니스탄은 20년만에 다시 이슬람 무장단체인 탈레반의 나라로 되돌아갔다. 탈레반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아프간 대통령은 현금다발을 쥐고 우즈베키스탄으로 국민을 버리고 탈주했다. 버림받은 국민은 정부에 대한 기대를 상실했고, 국가 수호의 의지도 사라졌다. 이들은 피눈물 나는 생존의 탈출구를 찾아 아비규환의 생존 투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한 순간까지 뒷바퀴 쪽에는 사람들이 새까맣게 매달려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카불 국제공항을 이륙하는 비행기에 점 두개가 매달려 있다가 이내 하늘에서 추락하는 모습이었다. 134명 정원인데 640명이 탄 수송기 내부사진도 공개됐다. 마치 한국전쟁 시 흥남에서 철수하는 미군 함선에 정원의 10배가 넘는 피난민이 빼곡히 앉아 있던 모습과 흡사했다. 이런‘필사의 탈출’은 미군의 갑작스러운 철수에 따른 비극의 결과였다. 미국의 철수 결정은 질서 있는 출구전략을 마련하지 못했고, 베트남전 당시 사이공 탈출이란 치욕적 장면을 46년만에 되풀이한 셈이 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아프간 전쟁에서 실패한 것이 아니며, 미군 철수는 국익을 위한 결단이었다고 했지만, 실패한 전쟁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었다. 20년간 미군 2500여명이 사망했으며 2조달러가 넘는 전비가 소요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장악하고 있었던 아프간에서 어떻게 탈레반이 재집권을 할 수 있었을까?  


    우선 미국은 전쟁 의도부터 정당하지 못했다. 이 전쟁은 2001년 뉴욕에서 발생한 9.11 테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 국방부 등에 테러를 일으켰고, 미국은 탈레반 정권에 테러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을 넘기라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범인들의 신병 인도를 거부했다고 무자비 공격을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또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9·11 테러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거나 협력했다는 심증은 있되 구체적인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여기에다 유엔 승인 없는 공격은 국제법 위반이기도 했다. 


    두번째는 아프간 군대의 자질 부족이다. 신병 95%가 초등 3학년보다 읽고 쓰는 능력이 떨어지며, 기초적인 PT체조 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발맞춰 행진하는 것도 어려웠다. 다시 말해 정규군이라고 말하기 창피한 수준이었다. 초등학생보다 못한 움직임을 보인 배경은 교육수준에 있다. 아프간 인구 중 43%만 글을 읽고 쓸 수 있다. 즉 아프간 군대는 말이 안 통한다. 아프간에서는 공용어인 파슈툰어ㆍ다리어뿐 아니라 다양한 기타 언어도 사용한다. 단체로 모여진 군대를 움직일 때 한가지 말로 명령이 안된다.


    세번째, 아프간은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7개의 주요 민족과 혈연중심의 지역 거점 부족, 군별로 파편화된 사회적 배경 때문이다. 자주 외침을 받아온 아프간 주민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신병을 모집해도 빈번하게 탈영해 제대로 된 군대를 꾸려나갈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오바마 행정부는 정부군 규모를 늘리는 데 힘을 쏟았다. 2008년 14만 8000여명에서 2011년 30만여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정부군 규모는 밖으로 알려진 30만명보다 적은 5만여명이라고 추정된다. 그 중 상당수도 장부에만 있는 ‘유령 군인’이었다. 


    네번째, 미국식 민주주의는 출발부터 반칙이었다. 지난 2019년 워싱턴포스트가 입수해 전한 ‘아프간 페이퍼: 전쟁의 비밀 역사’란 탐사 보도는 미국 정부의 편의주의적 발상이 아프간 정치에 끼친 악영향을 묘사하고 있다. 아프간 부족의회가 모여 새 헌법을 만들던 2003년, 미국 정부는 인권과 여성의 권리에 대해 자신들의 뜻을 지지하는 대표들에게 달러를 선물했다. 그들은 이걸 ‘좋은 패키지(nice package)’라고 불렀다. 2005년 아프간에서 총선이 열릴 무렵에는 이런 인식은 상식처럼 굳어졌다. 의원들은 자신들의 투표가 미국에 수천달러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미국대사관에 가서 이 돈을 받은 뒤 그 경험을 주변 정치인과 공유했다. 이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아프간 엘리트들의 경험에는 돈이 깊이 개입해 있었다. ‘좋은 정치’ 아닌 ‘도둑 정치’를 안착시킨 것이다. 이런 아프간 엘리트 부패에 눈감은 미국 스스로가 탈레반의 부활을 불렀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을 통해 9·11 테러의 범행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고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위협을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미국의 성과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당초 아프간 전쟁의 목적은 기존 집권 세력인 탈레반을 축출하고 친 서방 성향의 민주정부 수립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 20년간 아프간에 쏟아부은 비용은 전쟁 예산, 참전용사 관리, 전쟁 차입금 예상 이자 등을 아우른 금액은 올해 한국 국방예산의 50배나 된다. 이같은 막대한 자금 투입에도 아프간 정부는 자립하지 못했고, 국민들의 신뢰도 잃었다. 2014년과 2019년 치러진 아프간 대선은 모두 부정 선거로 얼룩졌다. 미군 철수가 가시화되었을 때도 자력 국방을 확충해야 할 시점에 국방장관은 10개월이나 공석이었다. 아프간 재건에 들어간 지원금도 복잡한 중간 전달 체계를 거치면서 상당 부분 사라졌다. 지난해 발간된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아프간 재건에 투입한 1430억달러 중 최소 190억달러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후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여성이 거리에서 총살을 당했다. 이제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간에서는 이런 비극이 일상화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할 만큼 했다. 싸울 의지를 상실한 군대, 부패한 정부와 권력층, 분열된 국민에 온전한 국가가 세워질 리 없다. 그렇기에 미국이 아프간 철수 결정을 지금에서라도 내린 것은 미국을 위해서 다행이다. 지금은 패전을 인정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아프간 패전에 대한 이유가 분분하지만, 무엇보다도 탈레반의 귀환은 아프간 국민 스스로가 국가를 지키기 위한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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