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그랜비로 낚시를 갔다가 잡아 온 송어 두마리를 받았다. 그의 차 트렁크에는 각종 캠핑 장비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 옆에 놓여있는 두툼한 흰색 쓰레기 봉지가 눈에 띄었다. 그 쓰레기 봉지는 본인의 짐가방보다 훨씬 부피가 컸다. 저기에 뭐가 들었냐고 물어보니, 낚시하고 주변의 쓰레기도 담아왔다고 했다. 어찌나 쓰레기가 많던지 줍다줍다 전부 주워오지는 못했는데, 누가봐도 한국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라는 것이 티가 나서 최대한 주워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실제로 그랜비 호수는 한인들에게 낚시와 캠핑을 위한 최고의 인기 스팟이다. 그런데 이런 곳이 한인들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하다. 한때는 불법으로 너무 많은 고기를 잡아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쓰레기가 문제가 되고 있다. 


    고사리철이 끝났다. 콜로라도에 사는 한인들에게 5~6월에 고사리를 꺾으러 가는 일은 소소한 일상의 재미가 된 지 오래다. 소풍가는 기분으로 가서 퍼밋에 제한된 정량만 따오면 된다. 그런데 항상 도가 지나쳐서 문제다. 일단 고사리 밭을 가게 되면 욕심이 생겨서 정해진 양같은 것은 머릿속에서 까맣게 잊혀지기 일쑤다. 미 산림청 콜로라도 지부에 따르면 올해 400장이 넘는 고사리 채취 퍼밋을 판매했다고 한다. 콜로라도에는 고사리를 채취할 수 있는 곳이 상당히 많지만, 대부분이 미 산림청 소유의 국유지이거나 개인이 소유한 사유지이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 고사리를 채취할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은 콜로라도에 사는 한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퍼밋을 구매하지 않고 고사리를 따다가 산림청 관리직원에게 적발될 경우, 퍼밋 가격의 수십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 퍼밋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채취할 수 있는 규정 양도 중요하다. 2년전에 한인 한명은 1천달러의 벌금을 낸 적이 있다. 정해진 양보다 너무 많은 고사리를 채취했기 때문이다. 일단 퍼밋을 구입하고 나면 산림청에서 나누어주는 1부셀 짜리 오렌지색 봉지 안에 고사리를 채취해서 담으면 된다. 그런데 검정색 대형 쓰레기 봉투 몇 자루에 고사리를 가득 담아서 오는 이들도 있다. 아예 부피를 줄이기 위해 현지에서 채취하고 삶아서 말려서 오기까지 한다. 고사리 퍼밋은 고사리를 많이 캐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산을 훼손시키면 안된다’라는 의무감을 가지고 자연을 대해 달라는 뜻일 게다. 그리고 여기에는 고사리 채취를 제한해 최대한 동식물과 자연을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미국인들의 자연 철학이 담겨있다. 


    지금은 버섯철이다. 콜로라도에서는 7월말부터 버섯 캐러 가는 일이 유행한다. 그만큼 버섯 캐기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매년 치르는 연례행사와도 같다. 고사리도 그렇지만 특히 버섯 캐는 장소는 국가기밀 수준으로 보안이 유지되는데, 대략 포트 콜린스, 볼더 뒷산, 와이오밍에서 채취한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마치 올 한 해만 버섯을 캐고 끝장 볼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한달에 1만달러를 벌 수 있다며 하던 비즈니스도 닫고 버섯철만 되면 아예 산으로 들어가는 이들도 여럿 봤다. 몇년 전에는 버섯을 캐러 간 60대 아저씨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산속을 헤매다 경찰 수색대의 도움으로 새벽 1시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구조가 되었다. 경찰견까지 동원되어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이때 동원된 인력이 스무명이 넘었다고 한다. 미국 경찰들의 입장에서는 할아버지 혼자서 버섯을 따기 위해, 밤 늦게까지, 산 깊숙한 곳을 헤매고 다녔다는 상황이 이해가 될 리 없다. 또 버섯 캐러 가면 버섯만 캐고, 그 주변은 손으로 조심스레 덮어 정리를 해 놓고 와야 되는 것이 상식인데 몇몇 한인들은 마치 전쟁터에 나선 전사들처럼, 무자비하게 밟고 파헤쳐 놓는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을이 다가오면 지천에서 돋아나던 버섯들은 해가 갈수록 자취를 감추기 시작해, 수확이 예년같지 않다는 자조섞인 한탄도 나오고 있다. 


    콜로라도에 가을을 찾아오면 무, 배추, 고추를 따러 다니는 풍경도 자주 본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문제가 발생한다. 무 대신 무청만 가져가겠다며 힘들게 농사지은 무를 함부로 뽑아 무청만 뜯어가고 무는 땅바닥에 그냥 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돈이 아깝다고 고추나 무, 배추 등을 수확해서 값을 지불하지 않고 슬그머니 줄행랑을 치는 파렴치한도 있다고 한다. 


    여기에 함부로 버려지는 한인들의 쓰레기는 점점 더 큰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낚시철, 고사리철, 버섯철이 되면 산과 강에 한글이 적힌 쓰레기 봉지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쓸려 돌아다니고 있다. 지금 한창 낚시철인 그랜비 호수도 겨우내 꽁꽁 얼어있던 호수가 녹으면 신라면 봉지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한글이 전혀 반갑지 않은 경우다. 산에 뒹굴고 있는 옥수수 수염차 빈병들, 영양갱 포장지, 새우깡 봉지, 라면 봉지들을 보면 낯이 뜨거워진다. 문득 스위스 융프라우 산 꼭대기에 있는 얼음동굴 입구에 한글로 쓰여진 ‘낙서금지’ 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얼마나 한국인들이 낙서를 많이 했으면 ‘안녕하세요’가 아닌 ‘낙서금지’ 라는 문구가 쓰여졌을까. 이를 보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이러다가 언젠가는 콜로라도 국립공원에도 한글로 ‘쓰레기 금지, 고사리, 버섯 채취 금지’라는 푯말이 붙혀질 지도 모를 일이다.


    고사리 채취를 위한 퍼밋 구입시 나누어주는 브로셔는 영어와 함께 한국어로도 고사리 채취 규정이 표기되어 영어가 어려운 한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정도면, 고사리를 채취하기 위해 필요한 퍼밋은 한인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고사리와 버섯이 아니어도 건강식품이 차고도 넘치는 세상에 살면서도 자연을 훼손하고, 법규까지 지키지 않아 민망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제는 자제할 시기이다. 즐거운 소풍삼아 정해진 분량만, 그리고 자연을 보존하는 것은 미국에 사는 우리가 응당해야 할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버리는 일행이 있으면 충고하고, 버려진 쓰레기, 특히 한국인이 버렸다는 것이 틀림없는 쓰레기들은 얼른 주워야겠다. 어딜가든 쓰레기 담을 봉지도 함께 꼭 가져가길 바란다. 전 세계인들이 찾는 콜로라도의 자연이 한인들 로 인해 망가지고 있다는 오명을 받는 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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