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국의 저명한 레스토랑 잡지에서는 세계 최고 레스토랑 50위를 선정해 발표했다. 이 잡지는 기자들의 투표로 매년 세계 최고의 식당을 뽑고 있는데, 미국 언론 내에서도 인정받는 명성이다. 이번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식당 ‘노마’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8백 명의 주방장의 손을 거쳐 나오는 모든 메뉴는 제철 재료가 가진 맛과 향을 최대한 살렸다는 평을 받았다. 이 곳은 점심, 저녁 코스가 1인당 2백 달러 정도로 비싼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끼 식사를 하려면 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가격을 제대로 받고, 최고의 식탁을 선사하겠다는 이 식당의 주인은 놀랍게도 33세의 젊은이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남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승부 근성’이 그를 이끌었다.

 노아 식당 외에 이번 리스트에는 미식가의 나라인 프랑스 식당 8개가 이름을 올렸고, 미국의 앨리니아도 6위에 올랐다. 일본에 있는 음식점도 12위에 올랐다. 하지만 한국 식당은 한 개도 소개되지 않았다. 먹고 살기 바빴던 70, 80년대의 한국 사회의 모습을 연상하면 이런 결과를 수긍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전세계로 한국인들이 뻗어 나왔고, 한국인이 있는 곳곳마다 한국 음식점이 자리를 잡았다. 더구나 먹거리 문화에서는 세계 어느 민족에게도 절대 뒤질 수 없는 것이 우리 민족의 강점인데, 알아주는 곳이 없다니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몇 일전 큰 아들이 학교에서 아시안 음식 축제를 한다며 한국 음식을 소개해달라는 공문을 가져왔다. 어떤 메뉴를 선택할까 고민했다. 한국 식당에 있는 메뉴판을 떠올렸다. 무엇보다도 미국인들에게‘이것이 바로 한국 전통음식’이라는 각인을 시켜 줄만한 메뉴를 찾아야 했다. 고민을 하다가 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한 사람은 김치와 갈비를 추천했다. 또 다른 사람은 만두와 잡채를 추천했다. 그런데 김치를 생각하니 매운 맛도 문제가 됐지만 무엇보다도 월 마트에 파는 일본 기무치가 떠올랐다. 갈비를 생각하니 요즘 미국 식당에도 흔한 것이 바베큐가 아닌가. 만두를 생각하니 중국집에 파는 덤블링과 딤섬의 응용작쯤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다보니 우리의 것이 분명한데, 한국의 음식이라고 소신있게 홍보할 자신이 없어졌다. 일단 이러한 걱정거리에서 비켜서 있는 잡채와 불고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 음식이 이태리의 피자, 일본의 스시, 인도의 카레처럼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으면 메뉴를 선택하고 소개하는 과정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아직까지 떠나지 않는다.

 얼마전 텔레비젼에서 일본 음식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봤다. 우리의 김밥과 비슷했다. 저렇게 돈을 들여서라도 일본은 자신의 음식도 아닌 음식들을 자기네들 전통음식으로 둔갑시켜 나가고 있었다. 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방영 중 나오는 모든 음식이 일본의 전통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갑자기 질투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저렇게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홍보를 못하는 것일까. 한국 축구응원단의 공식 캐릭터인 ‘붉은 악마’는 전설 속에 나오는 전쟁의 신 ‘치우천황’이다. 한국의 일부 야사에서 치우씨 부족이 한민족에 속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사학자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전설이 아닌 역사 속의 인물로 올렸다. 고조선의 텃밭이었던 요하 문명도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니 중국은 자신들의 역사라고 문명공정 해 버렸다. 김밥도 일본 스시에 밀려 김밥이 스시를 모방한 것으로 정리되어 있다. 경주에는 법주라는 좋은 술이 있는데, 일본은 임진란 당시 법주 제조비법을 알아내 정종(사케)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또, 조선의 도공을 납치해 그들 나름대로 도자기 제조 기술을 알아냈고, 이를 꾸준히 발전시켜 세계에서 일본 도자기를 인정받게 만들었다.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국기인 태권도, 전미 태권도협회 또한 미국인이 장악하고 있어 종주국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들은 한국이 버리고 관심 갖지 않는 부분을 가져가서 자신들의 문화로 정착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나무랄 수 없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가꾸고 발전시켜야 내 것이 되고 남들이 인정한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남이 소중하게 생각해 줄리 없다. 일본이 우리에게 배워간 김치가 세계적인 기무치로 둔갑하는 현실을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다. 이러다가 우리 것도 지킬 줄 모르는 무능력한 민족이 될까 걱정스럽다.

 생활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야겠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식당들은 한국 문화의 홍보관 임을, 나아가 우리 각자도 한국을 알리는데 앞장서야 하는 홍보대사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또, 한국의 전통문화는 진부한 것이 아니라, 자신 있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산임을 기억해야 한다. 좋은 것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그것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노마 식당의 사장처럼 말이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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