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선교회 조완길 목사

    몽골에서 지난 3월 13일 저녁부터 15일 아침까지 강력한 모래 폭풍이 불었다. 전문가들은 모래폭풍의 원인을, 초원에 새싹이 돋아나지 않은 건조한 겨울철이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필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모래 폭풍을 여러번 경험했기 때문에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잘 알고 있다. 모래 폭풍은 건조한 사막에서 시작되는데, 주로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 일어난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은 우기에 내리는 강우량이 적기 때문에 항상 메마르고 건조한 편이다. 메마르고 건조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사막화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비사막은 매년 서울 면적의 5배가 넘는 땅이 사막화되어가고 있으며, 세계에서 제일 큰 사하라 사막은 미국 본토와 비슷한 면적(980만km2)을 가지고 있다. 현재 지구의 대지 30%가 사막이라고 하는데, 온난화가 계속되는 동안 사막화도 계속 진행 될 것이다. 사막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강우량이 적은 것이다.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숲과 초지가 사라지고, 강과 호수가 마르면서 사막으로 바뀌는 것이다. 사막에는 극심한 기온차가 있다. 낮에는 태양빛이 강렬하게 비치고,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서 추위가 엄습하는 곳이다. 사막에는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을 구하기가 어렵다. 여행자가 오하시스를 발견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곳이다. 사막에는 길이 없다. 사막 생활에 익숙한 베두인들은 낮에는 그림자와, 밤에는 별 자리를 보며 방향을 정하고 이동하기 때문에 길을 만들지 않는다. 사막의 지리를 모르는 사람이 깊은 사막에 들어갈 경우 매우 위험하다. 25년전으로 기억하는데, 영국인 부부가 자동차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깊은 사막에 들어갔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자동차 가스가 떨어져 그곳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것이다. 


    사막은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정보 사회를 살아 가고 있는 현대인의 마음속에도 사막이 있다. 수 많은 정보를 공유하며, 최첨단 과학과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마음은 사막과 같이 메말라 가고 있다. 심리적으로 공허하고 고난과 고독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이 반드시 가져야 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감성이 사라지고 있다. 하덕규 목사가 작사 작곡한 ‘가시나무’ 가 우리의 병든 자아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중략)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참회의 서정을 담고 있는 ‘가시나무’에 반복해서 나오는 노래말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다. 이런 사람의 정서는 사막의 날씨와 같아서 환경에 따라 불쾌지수가 급상승 하기도 하고, 급강하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자기 욕심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이웃과 단절된 삶을 살게 된다. 최근에 미국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인종 차별의 문제와, 애틀란타와 볼더의 총기 사고도 타락하고 메마른 심성에서 시작된 모래 폭풍인 것이다.  


    반면에, 사막은 영적으로 연단과 은혜의 자리다. 그곳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시내 광야에서 40년 동안 목자로 연단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모세에게 광야는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은혜의 자리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40년을 배회하며 마실물과 먹을 양식 그리고 험한 길로 인해 지도자를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배은망덕한 이스라엘을 찾아 오셔서 생수와 만나 그리고 메추라기를 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지 시험하시기 위해서 40년 동안 메마른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이다(신8:2). 주석에서 광야의 히브리어 원문을 찾아보니  ‘미드바르’로 되어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은 ‘말하다 ’라는 뜻을 가진 ‘다바르’이며, 말하는 도구로서의 ‘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때로부터 이스라엘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후 광야는 단순한 빈들이 아니며 고난과 고독의 자리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됨을 확증해 주는 율법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 주시는 성막을 받았다(출 29:45,46; 민 5:3). 그들이 광야에서 받은 율법과 성막은 예수그리스도와 교회를 예표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누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한 것을 교회 생활이라고 설명했다(행7:38). 사막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며 안식을 누리고, 산떡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배부름을 얻으며, 생수이신 예수님으로 인생의 목마름을 해갈 해야 한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금식을 하시고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심은, 성도가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여러가지 시험을 당할 수 있으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말씀에 있음을 계시해 주시는 것이다(마4:1-11). 인생의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 예수님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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