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 한때 세간에 퍼졌던 얘기다. 이 얘기는 1998년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한 의학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이 발단이었다. 당시 웨이크필드는 “홍역·볼거리·풍진의 혼합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충격을 줬다. 이 논문 발표 뒤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 등에서 MMR 백신 접종률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거의 사라져 가던 홍역이 재유행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후일 웨이크필드 논문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 후 그의 의사면허는 취소되었고, 그의 논문도 학술지에서 철회되었다. 하지만 홍역 백신과 자폐증의 연관설은 지금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타고 계속 떠돌고 있다. 그 여파인지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홍역 사망자가 21만 명에 육박했다. 지금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가장 크게 이슈가 된 가짜뉴스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 빌 게이츠를 둘러싼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소문이었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자 인터넷에서는 ‘빌 게이츠가 백신으로 떼돈을 벌기 위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고의로 퍼뜨린 뒤 백신 접종을 통해 사람 몸에 마이크로 칩을 심어 세계를 통제할 것’이란 황당 괴담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여론조사를 했더니 미국인의 28%가 이 괴담을 사실로 믿고 있었다. 결국 빌 게이츠는 지난주 이 가짜뉴스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는“정신 나간 소리”라고 발끈하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를 사람들이 정말 믿느냐며 반문을 거듭했다. 현재까지 게이츠 재단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18억 달러를 기부했을 정도로 코로나 극복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이 가짜뉴스의 여파는 한국까지 갔다. 해외선교단체인 인터콥 선교회의 최바울 선교사가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노예가 된다고 설교한 것이다. 그는 "백신을 맞으면 그들의 노예가 된다, 빌 게이츠 등 특정 세력이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백신에 칩을 심었다"는 그의 주장은 SNS로 퍼져나갔다. 급기야 한국 주요 언론과 인기 심층취재 프로그램에서도 그에 대한 얘기를 다룰 정도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영어로 작성된 코로나 관련 기사 3천800만건을 분석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유통된 전체 허위정보의 38% 정도를 차지했다. 코로나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치료제'가 있다는 주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확산한 대표적인 가짜뉴스로도 조사됐다. 이처럼 우리는 가짜뉴스의 일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발하지 않은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도 가짜뉴스는 어김없이 나돈다. 지난 주말 오로라에 있는 한 미용실에서 들은 얘기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필자에게 가동빌딩 안에 있는 한의사가 병에 걸려 죽었다는 대화 내용이 들렸다. 뇌종양에 걸려 한의원도 내놓았는데, 결국 죽었다면서 젊은 사람이 안됐다는 얘기였다. 화자의 설명에는 듣는 사람이 혹하는 디테일이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지난주에 김 원장이 가동빌딩에 와서 렌트비를 납부하고 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면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얼마전 김 원장은 건강검진 과정에서 우연히 종양을 발견했고 바로 수술해 제거했다. 그리고 재활 치료 후 이전 상태로 거의 회복되었다. 다만 지금은 왼쪽 발목이 불편해 한 달 정도 더 운동치료가 필요할 것 같아, 3월 말경부터 한의원 재오픈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것이 지난주에 김 원장으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불과 일주일 후 그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일주일 전에 들은 얘기라면서 사망했을 리가 없다고 했지만, 말한 당사자는 3일 전에 들은 얘기라고 했다. 그렇다면 김 원장이 가동빌딩에 온 날과 닷새가 차이가 생긴다. 그 5일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필자는 곧바로 지인을 통해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김 원장으로부터 답변이 금방 오지 않자, 미용실에서 만난 분의 얘기가 사실일까하는 걱정도 살짝 들었다. 그러나 2시간 후 김 원장은 지인에게 리턴 콜을 했고, 건강한 목소리로 통화를 마쳤다. 이렇게 몇 시간 동안의 해프닝은 막을 내렸다.

 

      무심하게 던진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그는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분도 다른 사람한테 들은 얘기라고 하니, 이 가짜뉴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왜곡되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악의적인 의도는 없어보인다.  얼마전에 주유소를 팔고 새로운 사업체를 찾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필자에게 잘하는 브로커를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김모 부동산은 사기꾼이고, 이모 부동산은 인간성이 덜 됐고, 박모 부동산은 잘난 척을 해서 싫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는 김모, 이모, 박모 부동산을 모두 직접 만나보았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주변 사람들한테 들어서 안다고 했다. 이곳저곳에서 하는 얘기를  주워 들었다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서울도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딱 맞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척을 한다는 뜻이다. 직접 들은 말도 아니면서 우겨대는 사람한테는 천하장사도 못 이길 것 같다. 작은 동네일수록 소문은 오해를 낳고, 그래서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콜로라도 한인사회에서 소문은 오해의 시발점이 될 수 밖에 없다. 전세계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이를 믿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가짜는 빠르게 전달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가짜뉴스를 가려내고 진실이 담긴 뉴스를 전하는 것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특히, 고의적 가짜뉴스와 악의적 허위정보는 공동체에 대한 명백한 폭력이며, 결코 표현의 자유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콜로라도 교민들은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말고, 한 걸음 물러서서 이것이 악의적인 허위정보가 아닌지,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아닌지를 진중하게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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