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임기를 시작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참모들 가운데 한국계 인사들이 중요직을 맡았다. 데이비드 조와 지나 리씨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경호와 영부인의 일정을 각각 총괄하며 백악관의 안방을 지키게 됐다. 데이비드 조는 국토안보부 산하 비밀경호국(SS)에서 22년을 근무했다. 조씨는 지난달 초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바이든의 경호 책임자로 선발되었다.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을 최근접 경호하는‘경호부장’에 해당한다. 경호부장은 대통령과 사실상 24시간을 함께 하기 때문에‘문고리 권력'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조씨는 취임식 내내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외신들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 그는 과거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2008~2016년)으로 있을 때도 경호한 경험이 있어 외신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얼굴이긴 했다. 그는 또, 비밀경호국에서 백악관 보안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는 싱가포르와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진행된 경호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9년, 미 국토안보부 장관이 수여하는 ‘우수 공무원을 위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백악관 경호팀의 넘버 2로 승진했다. 지나 리씨는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의 일정을 관리하고 있다. 공식 직책은 일정 담당 국장(Director of Scheduling and Advance)이다. 청와대와 비교하자면 제2부속실장과 비슷한 자리이다. 리 신임 국장은 2016년 대선 기간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선거캠프에서 당시 부통령 러닝메이트였던 팀 케인 상원의원의 일정을 관리했던 이력이 있다. 또, 지난해 대선 때는 바이든 캠프에서 카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인 더글러스 엠호프의 일정을 총괄했다. 바이든 캠프 합류 전에는 바이든 재단에서 선임정책 담당관으로 일하면서 커뮤니티 칼리지 입학 등 군인 가족에 대한 지원 정책을 구상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오바마 2기 행정부에서는 백악관에서 허리케인 샌디 복구와 법무·인사 관리 업무를 맡아 두루 경력을 쌓았다. 이처럼 이번 행정부에서 대통령과 영부인과 늘 함께 있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그러나 한국계 미국인의 백악관 진출이 낯선 일은 아니다.  트럼프 시절에 뜸했지만, 이전 대통령 시절에는 한국계가 더러 있었다.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오바마 시절에는 지나 리 말고도 10여 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백악관에서 일했다. 입법 보좌관으로 백악관에 들어갔던 크리스토퍼 강 변호사는 선임 법률특보까지 올랐다.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과 종종 골프 라운딩을 함께 할 정도로 대통령의 최측근이 되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시에는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국가안보회의의 아시아 담당 국장으로 일하면서 북한 핵 문제 등 한반도 문제에 깊이 관여했다. 그리고 백악관에서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존 유 버클리대 법대 교수는‘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세력에 대한 선제공격’ 등을 법리적으로 뒷받침해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번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위원회에도 한국계가 대거 입성했다. 앤디 김(민주·뉴저지), 메릴린 스트리클런드(민주·워싱턴) 의원에 이어 영 김(공화·캘리포니아) 의원이 합류했다. 올해 최초로 한국계 의원 4명이 하원에 동시 입성한 데 이어 3명이 외교위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로써 한국 정부는 이들이 북한 인권 문제와 한반도 정책에 한국의 입장을 선명하게 대변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미 국무부에서도 한국계의 활동이 자주 보인다. 30년 전 1차 북핵 위기가 터졌을 때 미 국무부 한국담당 인원은 한 자릿수였다. 그래서 북한이 핵을 개발하며 ‘서울 불바다’까지 협박을 하는데도 신속한 분석과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후 미 국무부와 CIA에서 한반도 역사와 정치에 익숙한 한국계 채용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 무렵 CIA에 들어간 사람이 앤디 김 전 CIA 부국장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부서와 북핵 관련 인력을 포함하면 한국계가 50여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미 국무부의 한국계 최고위직은 성 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이다. LA 검사로 일하다 국무부 한국부장을 거쳐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사가 됐다. 차기 주한 대사 후보인 조셉 윤은 2018년 6자회담 미국 대표를 지냈다. 당시 중국의 6자회담 대표는 조선족인 쿵쉬안 유 현 주일 대사였다. 이로 인해 남·북·미·중 북핵 대표가 모두 한국어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에 드리워진 북한의 긴 그림자’란 글에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대북 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했다고 지적해 관심을 모았던 정 박 브루킹스 연구소 한국석좌가 지난주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로 기용됐다. 이처럼 한국계 미국인들이 백악관을 비롯해 미 정계에서 제법 중요한 활약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행정부 장관이 배출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미국의 동맹인 일본과 우방국인 대만 출신 미국인 가운데는 각료급 인사들이 이미 배출됐다. 미국 최초의 아시아계 장관인 일본계 노먼 미네타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부시 시절까지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부시 시절 노동부 장관과 트럼프 시절 교통부 장관을 지낸 일레인 차오와 바이든 행정부 초대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선임된 캐서린 타이는 대만계다. 오바마 시절 게리 로크 상무장관은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준비하면서 교통부 장관으로 데이빗 김 캘리포니아 교통청장이 거론되기는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계속 문을 두드리면 문은 열릴 것이다. 미 행정부에서도 한국말을 하는 한국계 장관이 배출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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